갑자기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네요~ 아침에 출근하며서 보니깐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다니더라구요. 연휴 잘들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전 할머니, 할아버지 뵙고 왔답니다. 연휴 첫날, 고향에 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동네가 무척이나 한가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음날 뵈러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저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역전으로 갔습니다. 역시 이곳은 연휴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졸던 아이

  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나 한 두 정거장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섯 명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버스의 맨 뒷자리 가운데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뒷자리에는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구요.

  잠시 후, 7~8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젊은 엄마가 버스를 탔습니다. 그 엄마는 버스 맨 뒤쪽의 남은 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자신은 그 앞에 섰습니다. 아이는 버스 안에서 무척이나 큰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습니다. 일어서서 가겠다며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더군요. 엄마는 그냥 앉아 있으라고만 말하고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이의 행동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부잡스럽게 행동하던 아이는 지쳤는지 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더군요. 아이는 제 어깨 쪽으로 격하게 머리를 찧으며 졸더군요. 나중에는 아예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국가대표(2009)’의 한 장면>



- 이런 적반하장이... 황당한 아이 엄마의 반응

 한참을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몸이 좀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 같아 살짝 어깨를 앞쪽으로 뒤틀었더니, 아이의 머리가 제 등 뒤로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걸 그대로 두자니 버스 등받이에 허리를 기댈 수가 없어 불편했습니다. 또 버스가 급제동이라도 하면 등 뒤에 빠져 있던 아이의 머리가 눌릴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앞으로 일으켜 세우자, 아이는 꼭 감고 있던 눈을 배시시 뜨더군요. 그때 아이의 엄마,

  “00야!! 아줌마 불편하시다잖니!!! 똑바로 못 앉니!!!”

라고 하면서 아이를 거칠게 잡아 흔들더군요. 굉장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험한 눈길로 아이를 쳐다보며 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더군요.

  “아니, 저기...”

저는 너무 억울하고 당황스러워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해명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머리가 등 뒤로 빠져서 머리를 빼 내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걸 제가 귀찮아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아무리 그렇게 오해를 했어도 그렇죠. 멀쩡한 처녀한테 아줌마라고 한 것도 기분 나쁜데, 아이가 계속 제 어깨에 머리 기대고 있었을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뒤로 빠진 아이의 머리를 앞으로 빼자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정말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아이는 잠시 눈을 뜨는 듯 하다가 다시 졸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반대쪽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머리가 앞뒤로 흔들리자, 남자는 자신의 어깨를 조금 낮춰 아이가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의 반응이 당황스럽더군요.

  “어머나~~ 정말 감사해요~ 얘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호호호~”

  아, 정말, 이런 식으로도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첨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좀 불편한 거 참으면서 아이가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했다가, 아이의 머리가 등 뒤로 빠지자 꺼내주었던 것뿐인데 저런 기분 나쁜 반응을 하다니!! 게다가 잠시 옆에서 어깨를 기대게 해 주었던 남자에게는 급 반전된 호감을 표시하다뇨!! 기분 좋게 친구 만나고 집 가다가 맘만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씁쓸한 마음만 품고 돌아설 수밖에요.


  세상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황당한 일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연휴 첫날부터 기분만 상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그 엄마는 제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버스에 함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도 버스가 느리게 가던지.. 그날따라 유난히 집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답니다.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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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무척이나 돈이 궁했던 대학시절, 방학 때만 되면 돈이 될 만한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눈을 불을 켜곤 했습니다. 벼룩시장이니 교차로니 온갖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정보를 찾아 헤매곤 했지요.



-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 급하게 돈이 필요하였습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구인광고지를 급하게 뒤지다가 빙고!! 드디어 하나 발견했습니다. ‘방향제 판매 아르바이트’ 기본급+알파. 기본급도 6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아~ 이거 괜찮겠다 싶었지요. 당장 전화로 아르바이트 문의를 하였습니다. 낼부터 당장 일이 가능하다더군요.

  다음날,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 할 장소를 향했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했지만, 거금에 눈이 먼 저는 버스 여러 번 타는 귀찮음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답니다. 아르바이트 장소는 예상 외로 꽤나 좁고 허름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정말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싶더군요.

  전단지 상에는 기본급+알파라더니, 사장을 만나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예 성과제더라구요. 방향제 하나의 가격은 3천원. 한 개를 팔면 천원을 아르바이트생이 가지게 되고, 나머지 이천 원은 사장이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은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장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 19살, 방문판매에 뛰어들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방문 판매제였습니다. 가정집을 제외한 모든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공장, 상가, 시장, 학원, 병원, 동네 작은 슈퍼까지 가정집만 빼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갔습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도 붙잡고 판매를 할 정도였지요. 그 당시에는 방문판매라는 것이 뭔지, 불법인지 아닌지도 몰랐습니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정해진 장소로 갑니다. 본사는 수원에 있었지만, 방문판매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울, 대전, 천안 등등. 판매 목적지에 도달한 후, 곳곳으로 흩어집니다. 손가락 하나에 방향제 다섯 개씩 끼고 공장이든 상가든 닥치는 대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십니까~ 방향제 판매 아르바이트생인데요~ 방향제 하나만 사 주세요.ㅜㅜ 이거 천연 재료로만 만든 방향제라서 머리도 안 아프고 좋아요~”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어린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대견하게 여겨서인지 사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천연재료로 만든 방향제라고 광고를 하였지만 제가 느끼기엔 싸구려 재료로 만든 방향제 같았습니다. 굉장히 독한 냄새가 나구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허위광고를 한 셈이군요..ㅡㅡ;;;;) 이렇게 방향제를 판매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원래 장소로 집결을 한 뒤 본사로 돌아가 판매한 개수대로 일당을 주었습니다.

  첫날 제 성과는 방향제 50개 판매. 첫날 치고는 꽤 괜찮은 점수였습니다. 첫날 오만 원을 손에 쥐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겪었던 피곤함과 창피함은 눈 녹 듯 사라지더군요.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10개도 못 팔았습니다. 자기는 도저히 창피해서 못 하겠다면서 다음날 바로 그만둬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보고도 같이 그만두자고 하였지만 우선 돈을 손에 쥐고 나니 ‘창피한 것 그까짓 게 무어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전 혼자 남아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 너 앵벌이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좋아지는 제 판매 실력~ 점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많아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새로운 판매장소를 향하였지요. 그날 행선지는 제 기억에 청계천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계천 복구되기 전이었지요. 유난히 추웠던 그날, 두꺼운 점퍼를 입고 여전히 손가락에는 방향제를 끼우고 장사를 하기 위해 차를 나섰습니다. 퍽이나 추워서 손가락은 얼고 급기야 땡땡 부어오르기까지 하였습니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얼굴도 빨개지고 머리도 헝클어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다가 목표 부동산 발견!!

  “안녕하십니까~ 방향제 아르바이트 학생인데요~ 방향제 팔러 왔어요~ 하나만 사 주세요~”

  또 방향제 광고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이런저런 광고를 하였는데 부동산 주인 반응이 영 미지근하더군요. 저를 한참동안 의심스러운 눈길로 위아래 훑어보더니 내뱉는 말.

  “너 앵벌이지?”

헉. 앵벌이라니. 발끈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소지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제 상태가 말이 아니었거든요.

  “아니예요~ 전 그냥 대학생이구요. 방향제 판매하는 아르바이트생이예요~”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손도 얼어붙고,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가 이런 거 시키는거야, 학생?”

  “아 정말 저 그냥 아르바이트생이라니까요~”

  “자꾸 거짓말 칠거야? 어디 학교 다니는데?”

  “저 00대학굔데요?”

주인아저씨의 의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끝없이 심문을 계속할 것만 같았습니다. 학생증을 보여 달라더군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팔아야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아냐, 이걸 기화로 많이 사달래자.. 으흐흐’하는 교활한 생각에 학생증을 재빨리 내밀었습니다. 학생증을 확인하고, 무슨 과인지까지 확인하고서도 의심을 못 푸는 지 이제는 가족사항이며,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까지 묻더라구요. 최대한 진심 어린 표정으로 성실하게 답변했습니다.(사실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음, 학생이 고생이 많네. 기특해.”

  “아저씨 저 기특하죠? 그럼 좀 많이 사 주세요~^^”

  결국 저는 그 부동산 아저씨한테 싸구려 방향제 10개를 팔았습니다. 제가 퍽이나 대견스러워 보였던 모양입니다.(아싸~ 성공!! 전 속으로 교만한 웃음을 지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 부동산을 나설 때 뒤에서 들려오는 말..

  “으이구, 불쌍하네. 정말로 앵벌이 아니겠지? 저 학생 말 진짤까? 가서 바로 돈 뺏기는 거 아냐?”

아저씨, 의심을 완전히 푼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를 따라오시더니 저희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는 차까지 왔습니다. 앵벌이 시키는 거 아니냐며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보시다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기셨는지 그제서야 돌아가시더군요. 앵벌이로 오해받을 만큼 내 상태가 그리 안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섭섭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 준 아저씨의 마음이 고맙더라구요.


  전 정확히 한달 뒤에 방향제 방문 판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을 일하고 번 돈은 총 120만원이었어요. 한달 아르바이트 한 것 치고는 정말 많이 벌었죠? 앵벌이로 오해 받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등 창피한 일도 많았으며, 춥고 배고팠었지만 나름 저한테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 같네요. 그때는 정말 돈이 궁해서 시작한 거였으니.

  그 이후에도 방학 때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방문판매 등의 아르바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절대로 다신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때가 너무 그리워지는 건.. 다시 돈이 궁해져서일까요?^^;; 힘들긴 했지만 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시간이었답니다~^^

오늘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비 피해 없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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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희 집은 통닭 장사를 하였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통닭집이었습니다. 저희 가게는 시장이 아닌 대형마트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맛도 맛이었지만 위치가 좋아서였는지 가게는 항상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따로 배달원을 쓰지 않고, 어머니가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셨습니다. 종업원이라고는 막내 이모 한명. 당시 저는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종종 가게에 나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곤 하였습니다.


- 어머니의 오토바이 사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날따라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닭을 튀겼고 어머니도 배달하시기에 바빴습니다.(나름 닭 좀 튀길 줄 압니다.ㅎㅎㅎ) 그런데 배달하러 나가신 어머니가 한참이 지나도 오시질 않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해 봤지만 받으시질 않으셨습니다. 잠시 후 가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쏠아, 엄마 지금 병원이야. 교통사고 났어.”

  “엄마, 무슨 일이야? 왜왜?”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가게 문을 닫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오는 도중,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어머니의 오토바이를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이 사고로 세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 통닭집 사장이 되다.

  어머니는 사고 때문에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니, 가게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 달이나 가게 문을 닫고 있자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모 월급도 줘야 하는데 말이지요.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가게라는 것이 며칠만 문을 닫아도 그 타격이 심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까짓것, 내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어머니는 제 생각에 당연히 반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기고 우겨서 결국 제 의견을 어머니한테 관철시키고 말았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를 자주 도와드리면서 흔히 봐 왔던 것들이었는데, 막상 제가 하려니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해 보이기만 합니다. 기름통을 씻고, 새 기름을 부어놓고, 배달되어 온 생닭 정리 및 닭 재단하기 등등. 가게 청소도 해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건 대충 하겠는데 이 기름통을 청소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온통 미끌미끌. 폐기름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 따로 모아 두었는데 이것을 식용유 통에 따로 담는 것도 힘들기만 합니다. 어찌어찌 어머니 하시던 대로 흉내 내서 손님 맞을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막내이모는 12시쯤에 출근을 하였는데 이모와 저는 닭 튀기는 일을, 배달은 마침 방학이었던 동생이 맡게 되었습니다. 닭 튀기는 방법을 배워 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이모가 있다고는 해도 바쁠 때는 두 명이 한꺼번에 닭을 튀겨야 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튀기는 방법을 모르고 있으면 주문이 밀리게 되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세 달 동안의 좌충우돌 통닭집 경영이 시작되었습니다.


- 황당한 닭다리 실종 사건

  아무래도 어머니가 안 계시니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모는 저보다도 더 늦게 어머니에게 일을 배웠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제가 이끌어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아침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게 문을 열고, 청소하고, 손님맞이 준비하고... 오후부터는 정신없이 닭 튀기다가 12시가 넘어서야 피곤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자는 나날이 계속 되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세 명은 나름 훌륭하게 각자의 역할을 소화해 냈고 어머니가 직접 장사를 했을 때와 비슷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통닭집을 운영하는 세 달 동안 황당한 사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것은 ‘한쪽 닭다리 실종 사건’입니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서, 장사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느끼던 어느 날입니다. 오후 4시, 닭 주문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씩씩대며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조금 전 닭을 튀겨간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뭐요? 이것 좀 함 봐봐요.”

그 사람이 내민 것은 우리 가게에서 튀겨간 통닭이었습니다. 통닭의 다리 한쪽이 뜯겨져 나가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당시 저희 가게는 닭을 잘라서 튀기기도 했지만, 통째로 튀기기도 했는데 이 손님은 통째로 튀긴 닭을 사 갔었습니다.)

  “다리 한쪽을 뜯어먹고 준 거요? 당장 다시 튀겨내요!”

  “손님, 이건 조금 전에 튀긴 닭 직접 가지고 가신 거잖아요. 저희가 어떻게 다리 한쪽만 뜯어내고 튀기겠어요?”

  “아니 이 아가씨 봐라?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요? 다시 안 튀겨요?!!”

  막무가내였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닭다리가 한 쪽이 뜯겨져 나간 채로 튀겨졌다면, 다리가 없는 부분은 튀겨진 흔적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가 봐도 튀긴 후에 다리가 뜯겨진 흔적이었습니다. 아니면 포장하다가 한쪽 다리가 뜯겨져 버렸을까요? 바쁘던 시간도 아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다시 튀겨내라고 우기는 사람을 상대로 싸워봤자 이득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다시 튀겨주고 말았습니다. 포장을 하기 전, 양쪽에 다리가 모두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을 시킨 후 그 사람에게 주었답니다.


<아는 분이 하시는 페리카나~ 저희 가게는 다른 곳에 있어요~^^;;>


  어머니는 세 달 후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나서 바로 가게로 복귀하셨지요. 몸이 안 좋으신 것을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제가 계속 사장 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3년 정도의 공백기를 거치고 어머니는 현재 페리카나를 운영하고 있으십니다. 페리카나에서 통으로 파는 닭은 없기에 더 이상 한쪽 다리가 뜯겨져 나갔다는 손님은 없네요.^^

  어제가 말복이라 삼계탕 같은 보양 음식 드신 분들 많으시겠어요. 삼계탕 무척 좋아 하는데 어제 점심 땐 김밥 대충 먹고 말았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말복, 말복 하니깐 예전에 닭집 운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힘들긴 했지만 참 재밌고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어제 삼계탕 못 드신 분들~ 오늘 저녁 치킨에 맥주(저는 술을 못 먹는 관계로 사이다^^) 어떠세요?^^ 참고로 닭은 175도에서 10분 정도 튀기는 것이 가장 맛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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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