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택시보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입니다. 택시는 아주 급할 때나 버스가 없을 때 아니면 잘 안 타는 편이지요.


- 검찰청? 경찰청?

  퇴근 후,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에 나갔습니다. 그날은 회사와 지인들이 준 추석선물들 때문에 양 손에는 짐이 하나 가득이었지요. 이 짐을 모두 가지고 버스를 타기는 너무 버거웠습니다. 마침 검찰청 바로 옆쪽에 사는 지인을 만나서 선물도 전달할 겸 해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기사님, 검찰청으로 가 주시겠어요?”

  “네~”

  저는 택시를 타면 지갑을 열어 돈을 미리 꺼내 놓곤 합니다. 그날도 짐을 의자 위에 놓은 후,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 하는데, 이런! 지갑에는 달랑 4천 원 밖에 없었습니다. 어라? 아까 분명 만 원짜리가 한 장 있었는데? 이놈의 덜렁거리는 몹쓸 성격! 어디에다 또 빠뜨렸나 봅니다. 그래도 검찰청까지는 4천원이면 충분히 가니까 우선은 다행이네요.

  택시타면 자주 느끼는 거지만, 동일한 장소에 가더라도 기사분에 따라 선택하는 경로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탄 택시 기사 분은 평상시 탔던 택시와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가네요. 그래도 어차피 검찰청 쪽으로 가는 길이니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좀 전까지는 검찰청 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점점 거기서 벗어나고 있는 겁니다.

  “어? 기사님? 왜 이리로 가세요?

  “왜요? 이 길로 가는 거 맞아요.”

  “어, 기사님.. 이 길로 가도 검찰청이 나와요?”

  “네? 어디라구요? 검찰청요? 경찰청 간다고 안 했어요?

  “아뇨, 검찰청인데요.ㅜㅜ 제가 발음이 이상했나 봐요.”

  “아 그래요? 이런 잘못 들었나 보군요. 그럼 여기서 돌려야겠다.”



- 부족한 택시비.. 이걸 어떡하지?

  그나마 더 가지 않고 차를 돌려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으니, 그건 바로 택시비였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택시비는 이미 3천 원을 훌쩍 넘기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길을 돌리더라도 검찰청까지는 4천 원이 훨씬 넘을 터였습니다. 하지만 제 지갑에 있는 건 겨우 4천 원 뿐. 입이 바짝 말랐습니다.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4천 원이 되기 전에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버스를 타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기사님. 저쪽 버스정류장에서 세워 주세요.

  “아니 왜요? 검찰청 간다면서요?”

  “아뇨, 그게... 그냥 내려주세요.”

  “왜요?”

  다른 분 같았으면 그냥 내려주셨을 텐데, 이분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계속 물어보시더라구요. 검찰청을 경찰청으로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요?(사실 제가 요새 치과 치료를 받고 있어서, 발음이 좀 새긴 했습니다..^^;;) 전 어물쩡거리다가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렸죠.

  “아.. 저 사실 택시비가 좀 부족해서요.

  “아 난 또 뭐라고. 됐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건데요. 그냥 가요.^^”

  “아녜요~ 제가 발음이 이상해서 그런 건데요. 괜찮은데.”

  “내가 맘이 불편해서 그래요. 그냥 가자구요~”

기사분은 쾌활하게 말씀하시고 검찰청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죄송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저기 다 어렵다지만, 택시기사 분들도 어렵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다행히 거리는 한산해서 검찰청엔 금방 도착했지만, 택시비는 6천 원 이상이 나왔습니다. 지갑에 있던 4천 원만 드렸지요.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감사합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아니예요~ 조심히 가세요~”


  마지막까지 무척 친절하고 안전하게 저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시고 그 기사 분은 차를 돌리셨습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그리고 또 어찌나 감사하던지. 참으로 마음 따뜻한 기사 분을 만나 무사히 검찰청에 도착했네요. 지인에게 선물도 잘 전달했구요. 부족한 택시비를 훈훈함으로 채워주신 그 기사 분, 연휴 잘 보내셨을라나 모르겠네요. 지인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양손에 들려 있는 짐 때문에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참으로 가벼운 하루였답니다.


이번 주부터는 정말 쌀쌀하네요. 낮엔 참 햇볕이 따뜻하지만.. 정말 가을입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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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갑자기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네요~ 아침에 출근하며서 보니깐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다니더라구요. 연휴 잘들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전 할머니, 할아버지 뵙고 왔답니다. 연휴 첫날, 고향에 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동네가 무척이나 한가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음날 뵈러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저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역전으로 갔습니다. 역시 이곳은 연휴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졸던 아이

  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나 한 두 정거장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섯 명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버스의 맨 뒷자리 가운데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뒷자리에는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구요.

  잠시 후, 7~8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젊은 엄마가 버스를 탔습니다. 그 엄마는 버스 맨 뒤쪽의 남은 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자신은 그 앞에 섰습니다. 아이는 버스 안에서 무척이나 큰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습니다. 일어서서 가겠다며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더군요. 엄마는 그냥 앉아 있으라고만 말하고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이의 행동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부잡스럽게 행동하던 아이는 지쳤는지 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더군요. 아이는 제 어깨 쪽으로 격하게 머리를 찧으며 졸더군요. 나중에는 아예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국가대표(2009)’의 한 장면>



- 이런 적반하장이... 황당한 아이 엄마의 반응

 한참을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몸이 좀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 같아 살짝 어깨를 앞쪽으로 뒤틀었더니, 아이의 머리가 제 등 뒤로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걸 그대로 두자니 버스 등받이에 허리를 기댈 수가 없어 불편했습니다. 또 버스가 급제동이라도 하면 등 뒤에 빠져 있던 아이의 머리가 눌릴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앞으로 일으켜 세우자, 아이는 꼭 감고 있던 눈을 배시시 뜨더군요. 그때 아이의 엄마,

  “00야!! 아줌마 불편하시다잖니!!! 똑바로 못 앉니!!!”

라고 하면서 아이를 거칠게 잡아 흔들더군요. 굉장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험한 눈길로 아이를 쳐다보며 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더군요.

  “아니, 저기...”

저는 너무 억울하고 당황스러워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해명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머리가 등 뒤로 빠져서 머리를 빼 내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걸 제가 귀찮아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아무리 그렇게 오해를 했어도 그렇죠. 멀쩡한 처녀한테 아줌마라고 한 것도 기분 나쁜데, 아이가 계속 제 어깨에 머리 기대고 있었을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뒤로 빠진 아이의 머리를 앞으로 빼자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정말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아이는 잠시 눈을 뜨는 듯 하다가 다시 졸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반대쪽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머리가 앞뒤로 흔들리자, 남자는 자신의 어깨를 조금 낮춰 아이가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의 반응이 당황스럽더군요.

  “어머나~~ 정말 감사해요~ 얘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호호호~”

  아, 정말, 이런 식으로도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첨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좀 불편한 거 참으면서 아이가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했다가, 아이의 머리가 등 뒤로 빠지자 꺼내주었던 것뿐인데 저런 기분 나쁜 반응을 하다니!! 게다가 잠시 옆에서 어깨를 기대게 해 주었던 남자에게는 급 반전된 호감을 표시하다뇨!! 기분 좋게 친구 만나고 집 가다가 맘만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씁쓸한 마음만 품고 돌아설 수밖에요.


  세상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황당한 일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연휴 첫날부터 기분만 상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그 엄마는 제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버스에 함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도 버스가 느리게 가던지.. 그날따라 유난히 집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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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과 운동을 갔다가 밤 11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동생에게 줄 선물을 하나 샀습니다. 동생이 정말 기뻐하면서 받을 거라 기대했는데, 반응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것을 왜 샀느냐는 것입니다. 돈이 그렇게 남아도느냐면서 못마땅한 소리를 하더군요. 맘이 너무나 상했습니다. 쓰기 싫으면 놔두라고 소리 지르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 누나, 엄마 다치셨어. 알고 있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잠시 후 문자 하나가 옵니다. 동생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누나, 엄마 절단기에 손 다치셔서 바늘로 다섯 방이나 꿰맸어. 알고나 있는 거야? 엄마, 아빠한테 신경 좀 써.’

당장 동생 방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지만, 올케와 조카가 자고 있을 시간이라 핸드폰으로 답장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야? 정말이야? 언제 그런 거야!!!! 엄마 괜찮아? 어쩌면 좋아!!’

  ‘누나 너무하는 거 아냐? 신경 좀 쓰라구.’

동생이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애자'(2009)>


- 절단기에 손 다치신 어머니

  밤 12시, 어머니는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계실 시간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우리 딸~”

  “엄마, 손 다쳤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어떻게 다친 거야? 언제 그랬어!! 장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아이고, 00가 말했냐? 많이 안 다쳤어. 살짝 스친 것뿐이야. 걱정 마, 왜 울고 그래.”

  “살짝 스쳤는데 바늘로 꿰맸어? 왜 말 안 했어.”

  “괜찮다니깐. 그만 울어. 아이고, 우리 딸 바보 같네.”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심하게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물만 계속 났습니다. 너무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어머니는 치킨집을 하시는데, 생닭을 튀김용으로 자르는 기계가 있습니다. 이 기계로 닭을 자르시다가 손을 다치신 모양입니다. 아무한테도 말씀 안 하시고 있는 걸 동생이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제대로 보는 날이 일주일에 한번이라지만,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 전 정말 나쁜 딸입니다.

  며칠 전, 부모님 드린다고 혈액순환 관련 건강식품을 샀습니다. 꽤 비싼 돈을 들였지만, 내심 속으로 뿌듯해 하고 있었답니다. 스스로 난 참 효녀라 자부하면서. 어찌나 어리석었던지. 당장 옆에 계시는 어머니 손 다치신 것도 모르고,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가게 일 도와드리지도 못했던 제가 너무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말씀을 모두 잔소리로 듣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큰 소리를 쳤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엄마가 뭘 아냐’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습니다. 어머니 늘 고생하시는 거 알면서도 내 삶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건강식품 하나 사 드리고 효녀가 된 듯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니요.

  전 정말로 나쁜 딸입니다. 아무리 숨기셨다지만, 어머니 손 다치신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날카로운 절단기에 손을 다치고 피를 흘렸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지면서 눈물만 났습니다. 죄책감이 어찌나 저를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들어오실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살펴보았습니다. 붕대로 칭칭 감은 손은 그때의 상처가 꽤 깊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얼굴을 보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울지 말라며 오히려 저를 토닥거리시는 어머니 보기가 참으로 창피했습니다.

  어머니,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늘 속만 썩여 죄송합니다. 다친 것도 모르고 어머니 신경 쓰지 못한 것 너무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할게요. 제발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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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지금의 제 헤어스타일은 짧은 단발입니다. 단발로 자른 지는 얼마 안 되었구요. 거의 6년 동안이나 긴 파마머리를 고수해 왔었답니다. 과거 학창시절 저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제가 8년 동안이나 짧은 상고머리를 하고 있었단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완전히 남자 머리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사진을 보여줘야 겨우 믿더군요. 왜 저는 머리를 그렇게 짧게 자를 수밖에 없었을까요?


- “머리 짧게 안 자르면 껌에다가 유리 섞어서 씹게 해 줄 거야!!”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제 초등학교 시절의 전성기였습니다. 친한 친구들의 지지와 선생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나날이 승승장구하던 제게 그런 시련이 닥쳐올 줄은 정말 몰랐지요. 당시 저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예쁘게 묶고 다녔었는데(머리만 이뻤어요. 머리만.^^), 6학년 선배들 눈에는 그게 참 꼴사납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껌 좀 씹고, 침 좀 뱉을 줄 안다는 6학년 선배 몇 명이 각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네 여자얘들!! 낼부터 머리 짧게 자르고 와. 옷도 체육복만 입고 학교 와. 교문에서 검사할 거야. 안 그럼 혼나! 니네 껌에다가 유리 섞은 거 씹어 봤어?? 그거 씹게 해 줄테니! 중학교 언니, 오빠들이 와서 가만 안 둔댔거든?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한테 말만 해봐 아주.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런 말을 내뱉던 여자 선배 한명하고 눈이 따악 마주쳤을 때,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 여자 친구들은 모두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답니다. 중학생들까지 대동을 한다니 어찌 겁이 안 날까요. 그 선배의 말대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일러바칠 엄두도 내질 못했죠.

  날라리 선배들이 돌아간 뒤, 교실은 친구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찼습니다.

  “어떡하면 좋아. 난 머리 자르기 싫어!!!”

  “어떻게 맨날 체육복만 입고 다녀!!”

  “그래도 어떡해. 유리를 씹히겠다잖아.ㅜㅜ”


- 결국 머리 잘랐더니...

  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지만 도통 답이 나오질 않더군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일 끝나고 돌아오신 엄마에게 대뜸 머리를 잘라 달라고 했지요.

  “갑자기 왜? 자르자고 해도 안 자르더니?”

  “그냥, 그냥 자를래. 무조건 자를래. 잘라줘!!! 응?응?”

엄마는 그렇잖아도 너무 긴 머리 거추장스러웠는데 잘 됐다며 가위를 가지고 오셔서 제 머리를 싹둑 자르시더군요.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가 잘려 나가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답니다. 댕강 잘려진 머리. 미용사가 아닌 엄마가 잘랐으니 모양은 오죽 했을까요. 며칠 뒤에 미용실 가서 다시 다듬긴 했지만, 그 다음날은 엄마가 잘라주신 그대로 학교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놀랍게도 같은 반 대다수의 친구들이 체육복을 입고 왔고, 머리를 짧게 잘랐더군요. 물론 그 중에서도 예쁘게 옷 입고, 긴 머리 그대로인 간 큰 친구들도 있었지만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를 협박했던 그 선배들은 어떤 용감한 학생의 신고(?)로 선생님들에게 걸려 무지막지하게 혼나고, 저희들은 체육복이 아닌 평상복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괜히 머리 잘라버린 사람들만 우스워진 결과가 됐지요. 아, 지금 생각해도 그 머리 너무 아깝습니다. 어째서 그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바로 머리를 잘라 달라고 했을까요. 너무 순진했어요. 그런데 참 우습죠? 그때 이후로 짧은 머리가 맘에 들어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머리를 기르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처음에 머리를 잘랐을 때보다도 더 짧은 상고머리를 고수했지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애자' 중 한 장면>



- 짧은 머리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

  처음 머리를 자른 이후, 제 머리는 날이 갈수록 짧아졌답니다.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여자 선생님 한분이 제 뒷모습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너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면 어떡하니!!”

제가 고개를 돌리며 선생님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여잔 줄 아시더라구요. 어찌나 황당하던지. 선생님은 괜히 남자로 오해했던 게 미안하셨던지 짧은 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면서,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 무척 많았을 것 같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해 주시더군요. 그 이후로 너 같은 얘가 남자친구였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말을 유독 많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평상시보다 더 짧게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갔습니다. 스포츠머리에 도달하기 바로 전 상태의 ‘짧은 머리였죠. 음악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제 머리를 탁탁 치시면서

  “야! 너 군대가냐? 머리를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 지금 너 나한테 반항하는거야?”

라고 짜증을 내시더군요. 물론 반 아이들은 엄청 웃어댔지요. 평상시에도 짧은 머리였긴 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머리가 짧게 잘려서 아마 더욱 남자 같이 보였을 겁니다. 평상시에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저를 곱지 않게 보셨던 탓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도 짧은 머리를 고수했었답니다.


- 지금 나는..

  오랜 커트 머리에 질린 저는 대학에 올라가자마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단발인 상태에서 머리를 기를 때도 자꾸 잘라버리게 된다는데,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커트인 상태에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으니, 다듬어도 참으로 지저분하더군요. 그래도 결국 머리를 기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머리가 짧았던 날에 대한 한풀이를 하듯이 머리를 지지고 볶고, 난리법석을 떨었지요.

  몇 달 전쯤, 그동안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어깨 위 단발로 헤어스타일을 바꿨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매우 안 좋아, 헤어스타일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단발로 싹둑 잘랐더니, 주변 사람들이 다들 몽실이 같다면서 놀려대더군요. 역시 기분따라 마구 머리를 자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 학창시절, 짧았던 머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때로 다시 확 잘라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아마 지금 그런 머리를 하면 분명 후회할 것 같네요.^^ 저도 이제는 더 이상 남자로 오해받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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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로 한창 바쁠 오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였습니다. 멀리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도 저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거의 없으셨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그렇게도 생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쁘냐?”

  “응, 조금. 무슨 일이야, 엄마가 전화를 다 하고?”

  “정희가 쓰러졌단다. 지금 의식불명인 상태래.”

  “왜왜? 왜 그러는데?”

  “자세히는 몰라. 사람도 못 알아본대. 지 자식도.. 퇴근하고 병원 좀 가봐라. 중환자실에 있어서 면회시간이 7시 40분부터 8시까지란다.”

  “엄마 어떡해. 어떡해.”

  엄마를 통해서 듣게 된 이야기는 저한테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내내 눈물이 흘러서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고열로 쓰러졌다고 하니, 신종플루일 것만 같았습니다. 오후 내내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Inside The ICU



- 늘 씩씩했던 그 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

  이번에 고열로 쓰러졌다는 지인은 네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외벌이에 네 아이를 양육하며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씩씩했습니다. 이제 겨우 7살이 된 큰 아이, 그리고 그 밑으로는 5살, 3살, 2살의 아이가 있습니다. 잠깐의 외출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2살짜리 아기는 등에 업고, 3살짜리는 안고, 7살과 5살 아이의 손을 잡고 바깥에 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철인을 연상케 했습니다. 참 힘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늘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었답니다. 그 분을 보면서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네 아이를 양육하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늘 건강하고 명랑하고 씩씩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고열로 쓰러졌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몸이 무쇠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이상, 그렇게 고생하면 체력이 바닥이 날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그 분은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너무 대단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신종플루일까봐 걱정했더니, 뇌수막염이라니..

  그 날 저녁, 업무가 끝난 후 중요한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빠질 수 없는 자리였던 터라 우선 회식자리에 참석한 후, 시계를 보며 초조히 면회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회식자리와 병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나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중환자실에 도착해서 본 그 분의 모습은 너무도 안쓰러웠습니다. 바짝 마른 얼굴에 팔은 온통 멍투성이었습니다. 고열로 정신을 잃었을 때 닝겔을 꽂으려고 하자, 몸을 하도 버둥거려서 생긴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갔을 때는 다행히 고비는 넘긴 상태였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그 전날 오전부터 계속 열이 났었는데, 오후가 되자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더랍니다. 그래서 업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왔는데, 첨엔 신종플루인 줄 알고 관련 병동으로 보냈었는데, 고열 외에는 신종플루와 일치하는 게 없어서 다른 검사를 한 결과, 세균성 뇌수막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뇌수막염은 뇌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의사도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모른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혹시나 모를 뇌손상을 위해 MRI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검사결과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네요. 뇌수막염으로 쓰러지면 경과가 좋은 경우에도 보통 3, 4일이 지나야 깨어나는데, 지인의 경우 이틀 만에 깨어났으니 회복 정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3주 정도만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 역시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닌 듯.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 분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긴 후였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과 몸, 부르튼 입 등 여전히 쇠약한 상태였지만 정신은 맑아 보였습니다.

  “쏠, 왔어? 고마워. 나 꿈꾼 것 같아. 팔도 다 멍들고. 정말 이럴 줄 몰랐어. 사실 며칠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했었는데, 결국 정말 쉬게 됐네.^^;”

띄엄띄엄 힘들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말리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많이 회복된 듯 보여 마음은 참 편안하더군요. 그래도 말은 정말 조심해서 해야 하나 봅니다. 쉬고 싶다고 말했다가 이런 식으로 정말 쉬게 될 줄이야.^^;;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번 일로 인해서 정말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빨리 처신했기에 이만한 일로 끝났지 조금만 늦어졌으면 뇌에 큰 손상을 일으킬 뻔했다고 의사가 말했거든요. 지인의 집에는 양가 부모님들이 오셔서 아이들을 봐 주시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참에 아이들로부터 해방(??)돼서 푹 쉬고, 건강 얼른 회복했음 좋겠네요.

  전국적으로 비가 오네요. 오늘 지나면 많이 쌀쌀해진다고 합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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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여러분은 언제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 보셨나요? 전 중학교 1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 보았답니다. 초등학교(저 다닐 땐 국민학교였지만...^^)때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까지도 집과 근처 동네가 생활권의 전부였습니다. 집, 학원만 왔다갔다 하고, 동네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노는 평범한 학생이었지요.


- 에버랜드 소풍 가는 날!!

  그러던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그날은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로 소풍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학교를 향했습니다. 아침 9시까지 학교에 집합하여 선생님들의 지휘 하에 단체로 에버랜드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가 보는 에버랜드!! 그곳은 환상과 꿈의 나라였습니다. 넘쳐나는 기상천외한 놀이기구들과 볼거리들, 화려한 퍼레이드. 몇날 며칠을 놀라고 해도 다 부족할 만큼 저에게는 멋진 동화 속 세상처럼 느껴졌답니다. 4시까지 집합하라고 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몇 분 남겨두고 집합 장소로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한명도 빠짐없이 모인 것을 체크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차례대로 시내버스에 태워서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탔었지만, 집에 갈 때는 친구들과만 버스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 만원버스에서 못 내리다.

  에버랜드가 출발점이었던 그 버스는 정류장을 거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사람이 늘었습니다. 결국 버스는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이 빽빽이 차 있었지요.

  “혜정아, 어디서 내리는지 알지?”

  “걱정 마, 난 혼자서 버스 자주 타 봤어. 자연농원 접때두 친구들하고 버스타고 갔었는걸.”

  “그래, 너만 믿어~”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요. 한참을 재잘대다가 친구가 내리자고 끌어당겨서 버스 출구 쪽을 향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운전석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겨우 빠져 나가고 제가 맨 끝에서 뒤 따라 나가던 순간, 문 앞에 있는 큰 짐에 그만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 버스 문은 속절없이 닫히고 말았답니다. 지금이라면 “아저씨, 잠깐만요!!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소리쳤겠지만, 그때는 버스에 혼자 남게 된 것이 처음이라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라도 내리면 될 것을 전 바보처럼 발만 동동 구르며 그렇게 몇 정류장을 지나버리고 말았습니다.



- 5천 원 내고 버스 타다.

  바보 같이 그렇게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지나친 지는 오래고, 내린 곳은 난생 처음 가 본 장소였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얼른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도통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한적한 장소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버스에서 내린 반대방향으로 길을 건넌 후, 버스를 잡았습니다. 00로 가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간다고 합니다. 휴~ 이제 살았네요. 버스에 올라선 후, 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이런!! 5천 원짜리 한 장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동전도 없고, 회수권도 없습니다. 버스 혼자 타는 것도 처음인데다가,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5천 원을 내밀었는데, 기사 아저씨 버럭 하시더군요.

  “학생, 동전 없어? 천 원짜리도 없어?”

  “네.. 없는데요.. 이것 밖에..ㅜㅜ”

  “거스름돈을 어떻게 줘야 해.. 휴우. 우선 거기 있어봐. 다른 손님들 오면 대신 돈 받는 수밖에.”

  아저씨는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하셨습니다. 아저씨도 황당하셨겠죠. 5천 원을 내밀면 거스름돈 주기도 곤란하고. 지금 같이 교통카드가 있었던 때라면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충전식 교통카드를 충전시키지 않아, ‘잔액이 부족합니다.’라고 떴던 경험도 있긴 하지만.^^;; 전 너무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죠. 아주머니 한 분이 천 원짜리로 돈을 바꿔주시려고 지갑을 뒤적이셨는데, 개수가 모자랐는지 그만 포기하시더라구요. 그때 그 아주머니 뒤쪽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 한분이 제 앞으로 오시더니 대신 버스 요금을 내 주셨습니다.

  “학생, 요금 냈으니 이리 와서 앉아.”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전 거듭거듭 인사를 하고 빈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요금 받는 곳에 서서 거스름돈 다 채울 때까지 손님들 요금 대신 받을 뻔 했습니다.


  요금 대신 내 주셨던 아저씨는 다행히도 제가 내린 버스 정류장과 같은 곳에서 내리시더군요. 사실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잘 몰랐었거든요.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버스도 잘 타고, 집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어리버리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좌충우돌 버스 탑승기는 그렇게 해서 막을 내렸답니다.

  지금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는 생활이 되지 않을 만큼 생활권이 넓어졌습니다. 그런 지금도 가끔 버스를 잘못 타거나, 딴 짓하다가 엉뚱한 정류장에서 내리곤 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교통카드 겸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니, 5천 원 내고 당황할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진 않는군요.^^ 요즘엔 돈을 내고 타시는 분들이 거의 없는데, 아침에 버스 타고 오다가 동전 넣으시는 분 보고 옛날 어리버리했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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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요즘 몸이 부쩍 쇠약해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습니다. 70이 넘어서까지도 정정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는 목소리에서부터 피곤함과 힘없음이 묻어나옵니다.

  “할아버지, 저 쏠이예요. 저녁 진지는 드셨어요? 몸은 좀 괜찮으시고요?”

  “오냐, 나야 뭐 늘 좋다. 너거들은 우짜냐. 집안은 두루두루 평안하고?”

  “그럼요. 저희 걱정은 마세요.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휴가라도 내고 한번 내려가야 하는데.”

  “워메, 됐다. 바쁜데 어딜 내려오냐. 우린 괜찮다. 잘 지내그라.”


-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살던 어린 시절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저와 동생은 어린 시절을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답니다. 물론 1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요. 당시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수도권으로 갓 올라와 앞으로 살 기반을 마련하시느라 고생을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저희들을 할아버지 댁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사정을 딱히 여겨 저희들을 맡아 주셨답니다. 철없던 그 시절, 참 무던히도 할아버지, 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속 타는 것도 모르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어린 녀석들이 밤 늦게 시골길 돌아다니고, 물가에서 장난치다가 물에 빠져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었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골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댁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있었고, 갖가지 야채들도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동네 빨래터와 함께 있는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곤충을 잡기도 하였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자연과 가깝게 지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저희 집 마당에 있는 앵두나무예요^^>


- 앵두 따러 지붕 올라갔다가 할머니한테 매 맞고..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할아버지 댁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저희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빨간 앵두나무 열매였습니다. 앵두나무는 축사 지붕 바로 옆에 심어져 있었는데, 매우 크게 자라 축사 지붕 위에까지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앵두나무를 눈여겨보고 있던 저는 동생을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누나와 함께 앵두를 타자고. 그럼 앵두 중 절반을 동생에게 주겠다며. 한 살 아래인 동생은 당시 누나 말이라면 그저 다 옳은 줄 알고 있었을 때입니다. 당연히 제 유혹에 넘어갔지요.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논에 나가셨을 때를 노렸습니다.

  “누나, 근데 앵두는 저기 지붕 위에 있는걸? 어떻게 따?”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저기 사다리 있잖아. 저거 벽에 대고 지붕에 올라가면 되잖아~~ 얼른 바구니 하나 가지고 와~.”

  “다치면 어떡해.ㅜㅜ”

  “아, 진짜. 안 다쳐!! 앵두 안 먹을거야?”

결국 저와 동생은 사다리를 가지고 와 벽에 걸쳐 놓고 지붕에 기어 올라갔습니다. 신나게 앵두를 따고 있는데, 할머니 오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서 내려올 수도 없었습니다.

  “이 녀석들아, 거기서 뭐하는거냐!!!!”

지붕 위에 있던 저희들을 발견한 할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셨습니다.

  “당장 안 내려와? 아이고, 내가 저것들 때문에 정말!!!”

내려가면 당장 맞을 것만 같아 무서워서 못 내려가고 있던 저희들을 할아버지가 달래셨습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겨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저희들을 붙잡으신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빗자루로 저와 동생을 사정없이 때리셨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다 큰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니, 할머니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얼마나 걱정스러우셨을까요. 자식들이 맡기고 간 손주들 행여나 다칠까봐 노심초사하셨던 그 마음을 모르고 할머니가 나쁘다고만 했었던 어린 시절을 떠 올려 봅니다.


- 이제는 갚아야 할 때

  그렇게 정정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제는 많이 편찮으십니다. 할아버지는 최근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아직도 밤에 갑자기 숨쉬기가 곤란하다고 하십니다. 전화기를 통해서 ‘쌕색’하는 할아버지의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말씀하시기가 힘드실 거 같아 몇 마디 안 하고 금방 끊었습니다.

  할아버지 댁은 전라도 시골, 저희 집은 경기도입니다. 먼 거리이긴 하지만,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왜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었는지... 광주에 살고 있는 동기가 놀러오라고 했을 때는 버스 타고 잘도 갔었는데, 왜 할아버지 댁은 그리 멀게만 느껴졌을까요. 어린 시절, 동생과 저를 그렇게 힘들게 돌봐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은혜. 이제는 저희가 갚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조만간 휴가라도 내고 할아버지 댁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안부 전화도 좀 더 자주 드리고요.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셨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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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날 일, 달 월~”

세 살배기 조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아버지께서 낭랑한 목소리로 천자문을 외우십니다. 머리가 희끗희끗,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버지의 젊음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금은 조금 덜하시지만, 어릴 적 기억에 아버지는 참으로 엄한 분이셨습니다. 조그마한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죠. 신의 성실과 청렴, 강직함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오신 아버지는 저와 동생에게도 이러한 것을 요구하셨답니다.




- 풍선 껌 한 개, 포도 한 알 훔치고 벌 받았던 기억

  제가8살 때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 잠깐 살았었는데,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무척 심심했었던 모양입니다. 집 근처 슈퍼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슈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풍선껌이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껌 한 개를 집어 주머니에 몰래 넣고 밖으로 나오는데, 슈퍼 밖 진열대에 있던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던지요. 주인 아주머니는 저를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은 듯 했습니다. 눈치를 보며 포도 한 알 떼어서 입에 넣었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쫓아 나오더니 저더러 ‘도둑’이라고 화를 내셨습니다. 아까 껌 훔치는 것도 봤다고 하시면서. 제가 어떻게 하나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앞장세워 곧장 저희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슈퍼 주인에게 거듭거듭 사과하셨고, 전 저녁에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께 엄청 맞고 문 밖으로 쫓겨나 꽤 긴 시간 손을 들고 벌을 섰답니다. 그 뒤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짓은 저에게 상상도 못할 일이 되었답니다.


- 동생, 아버지의 저금통을 털다.

  저와 제 동생이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을 때입니다. 당시는 매일매일 필요한 돈을 타서 썼기 때문에 용돈을 모아서 무엇을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생은 늘 풍족했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샀습니다. 대체 무슨 돈으로 저럴 수 있나 궁금했지만, 그때까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답니다.

  아버지는 동전이 생기면 안방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저금통에 저금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저와 동생에게 저금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돈의 중요함을 알리셨지요. 저금통은 유리 테이프로 꽁꽁 싸매져 있었고 저와 동생은 아버지께서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시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모아 두었던 저금통을 열어 은행에 예금시키려던 아버지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저금통 밑바닥에 작은 공간이 생겨 있었고, 돈을 빼낸 흔적이 있었습니다. 당장 저희 둘을 부르신 아버지는 저금통을 보여주시며, 사실대로 털어 놓으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너무 엄한 아버지의 표정에 동생은 그만 자신이 저금통을 털었다고 실토를 하였습니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동생은 맛있는 걸 사 먹고 친구들과 노는데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희들에게 청렴과 강직함을 가르치셨던 아버지는 꽤나 충격을 받으신 얼굴이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조용히 안방에 들어가셔서 참나무로 만든 방망이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내가 너를 잘못 키운 탓이다. 자, 이것으로 내 종아리를 때려라.”

아버지는 바지를 걷어 올리시고, 동생 앞에 섰습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실 겁니다. 저와 동생은 울면서 서로 자신이 맞겠다고 했습니다.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으시고 계속 때리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동생은 울면서 아버지의 종아리에 방망이를 가져다 대기 시작했답니다.

  “더 세게 때려, 더!!”

  “엉엉, 아빠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엉엉.”

한참이 지났습니다. 철없는 동생이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아버지의 다리는 파랗게 멍이 들었습니다.

  “아빠,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끝없이 눈물 흘리는 저와 동생 모습에 아버지는 저희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셨습니다. 다신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후 동생 또한 다른 사람 물건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아버지처럼 동전이 생기기만 하면 저금하는 습관을 들여, 꽤 많은 돈을 모으기도 하였답니다.


- 에필로그

  아버지는 오늘도 조카를 무릎에 앉히고 천자문을 외우십니다.

  “00야~ 항상 올바르게 살거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거라.”

아무것도 모를 세 살짜리 조카는 그저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즐거운 듯 웃기만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릴 적 도둑질로 배웠던 뼈 아픈 교훈을 되새깁니다.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바르게 자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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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때입니다. 열심히 하던 동아리 활동도 잠시 접고 무료한 생활 속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호스피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단체를 통한 봉사활동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호스피스라는 것이 너무 막연하게만 생각되었답니다.

  호스피스 봉사 활동은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교육 기간을 거쳐야만 합니다. 아마 교육기간은 주관하는 부서마다 다를 겁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의 경우 2개월 동안 호스피스 훈련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개월의 이론 교육이 끝나고 각 병원에서 실습까지 모두 마쳤습니다.(사실 사람을 두고 하는 봉사인데, ‘실습’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딱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네요. 이해해 주시길.) 곧 실전에 투입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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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 암 환자들을 만나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느껴졌던 것은 코를 심하게 찌르는 냄새였습니다. 모든 암 환자들에게서 나는 것은 아닌데 병동에 계신 분들 중, 욕창에 걸린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였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창피하지만, 그때는 그 냄새가 얼마나 역하게 느껴졌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신참이었기 때문에, 선배 봉사자들과 함께 다니면서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했습니다. 그런데 봉사자들은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를 전혀 못 느끼는 듯 했습니다. 연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신의 얼굴을 본 듯 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하지만 그때의 제 느낌은 그랬답니다. 기저귀에 대․ 소변을 봐 놓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갈아주고, 몸을 닦아주거나 입술에 물을 적셔 주었습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환자들의 몸을 부축하여 목욕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나중에 봉사자들 중 잘 알고 지내던 분께 여쭤봤습니다. 그 냄새가 역하지 않더냐고.

  “처음엔 물론 나도 그랬지. 코를 막고 싶었지만, 그들 앞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어. 거의 숨을 못 쉴 정도일 때도 있었고. 그런데 그때는 봉사만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 진짜로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니깐 냄새에도 익숙해지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사실 그 말을 백퍼센트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오래 하신 분들은 하나 같이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하시더라구요.


- 어느 말기 암 환자의 고백

  그러던 어느 날, 선배 봉사자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초보자인 제가 혼자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지만, 그동안 보았던 것을 바탕으로 환자 들의 입술에 물을 축이거나, 몸을 닦아주기도 하였답니다. 제가 들어갔던 병실에는 두분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한분은 설암 말기였고, 한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환자 분들의 입술을 축이다가 잠시 후, 깨어있던 한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손을 잡고 조용히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을까요? 그 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다.

  “앗,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깜짝 놀라 그 분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어디 딱히 이상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가슴에 잠시 손을 얹었다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정말 고마워. 손 잡아줘서 고맙고, 계속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네? 아니예요~”

  “자식놈들이 안 와. 나를 보러 안 와. 내가 죄가 많아서. 무서워. 혼자 이대로 죽을까봐. 어흑.”

그렇게 우시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분의 손을 잡은 채, 같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나중에 다른 분들한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할아버지 가족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할아버지를 맡긴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이 외로우셨을 겁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세상을 떠나게 되실까봐 그게 무척 두려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가 책을 읽어 드렸습니다. 2주가 지나 다시 병실에 찾아갔을 땐,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다른 분이 그 침실에 누워 계시더군요. 그래도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고 하니,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Hospice Cares For Terminally Ill During Final Stage Of Life


-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내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호스피스 봉사 활동을 오랫동안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그 짧은 봉사는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가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당신이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처음 이 문구를 접하고 얼마나 마음에 찔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과연 오늘을 보람되게 살았을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어영부영 생활하지는 않았나. 물론 우리에게 있는 오늘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죽음이 막연히 두렵고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호스피스를 통해 죽음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또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 지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물론 지금도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인생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훗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故 장진영씨, 위암으로 고통받았던 짧은 생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평안히 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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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저는 운동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꼭 운동하지요. 그나저나 요새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제대로 못했더니 몸이 뻐근하고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군요. 다니던 운동을 그만두고,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답니다.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편이기 때문에 빼 먹지 않고 나갈 건데, 얼른 목표 몸매에 도달했음 좋겠네요~^^;;


- 헬스장 등록해서 운동 시작!!

  3년 전이었을까요? 운동에 별 맛을 들이지 못했을 때입니다. 지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딱히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운동이나 다니자고 헬스장을 끊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기상, 세수 대충한 후 자전거를 타고 매일 헬스장을 향하곤 했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추워서 일어나기 싫었지만,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유혹을 뿌리치고 단호하게 일어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데, 스키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혹독한 날씨였답니다. 여차저차 헬스장 도착!! 대충 스트레칭을 하고, 런닝머신 위를 걸었습니다. 근력운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기 때문에, 그냥 걷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었답니다.



Mature woman drinking water from bottle with eyes shut

- 운동 후 벌컥 벌컥 들이킨 물이 화근

  한 시간을 그렇게 걷다 보니, 땀도 많이 나고 목이 무척이나 말랐습니다. 오늘 이 정도 운동하면 됐다 싶어, 런닝머신 위를 내려와 정수기 앞에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습니다. 연달아 다섯 컵을 마셨을까요? 갑자기 목이 컥하고 막히더니 숨이 안 쉬어지면서 눈앞이 노래지는 겁니다!! 하늘은 핑글핑글 돌고 숨을 쉴 수 없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목을 부여잡고 꺽꺽 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트레이너가 급히 달려오더니, 어쩔 줄 몰라 어깨만 흔들더군요. ‘이제 내가 죽는구나.’ 그 순간에도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이런 게 바로 객사구나. 부모님도 옆에 안 계시는데. 내가 죽으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쓰러졌던 저는 다행히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역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나!!^^;;) 운동 후, 땀으로 나트륨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갑작스레 많은 물이 들어오니 몸이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Four water bottles in a row
- 운동 후, 물은 한잔 반 정도만

  뉴스에서 운동 후에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을 마시다가 사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마라톤에서 한 여성이 목표장소에 골인 후, 페트병에 들어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저나트륨혈증’으로 사망한 경우랍니다. 운동 후에는 숨이 차고,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나트륨이 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이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낮아진 나트륨의 농도가 더욱 낮아져 쇼크 상태가 올 수 있고, 심하면 사망을 하게 되는 거지요.

  저는 다행히 금방 정신을 되찾았지만, 실제로 운동 후 지나친 수분 섭취로 사망한 경우도 꽤 있다 하니 정말 유의해야겠습니다. 물은 절대 급하게 들이키지 마시고, 운동 도중 조금씩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운동 후에 물을 드시더라도 한꺼번에 많이 드시면 안 되구요, 한잔 반 정도만 섭취하시는 게 좋답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는 운동, 잘못된 수분 섭취로 몸에 이상이 생겨서는 안되겠지요?? 모두 건강하게 운동하고, 제대로 물을 마셔 원하는 목표 꼭 이루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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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