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수선한 세상입니다. 매일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네요. 얼마 전, 강호순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했었지요. 그로 인해 한동안 대다수의 국민들이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저도 업무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일로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지요. 친구들은 장난으로 너는 밤에 다녀도 안전해~~라고 말을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런가요. 우선은 밤에 혼자 길을 지나다니다 보면 무서운 게 사실이고, 사람 하나만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아도 엄청 신경 쓰이거든요.



- 밤 12시, 대로변에서 낯선 남자에게 끌려갈 뻔...

  지인이 겪었던 일입니다.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인 12시에 집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로변이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차는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고, 가로등도 켜져 있지 않아 매우 어두웠답니다. 그래도 도로변의 넓은 길이라 안심하고 길을 가던 지인. 갑자기 뒤에서 누가 목을 졸랐습니다.

  “악!!”

  “조용히 따라와. 반항하면 죽인다.”

지인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고, 손톱으로 남자의 팔을 긁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도로변 옆에는 어두운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 골목으로 거의 끌려갔을 무렵, 다행히 그 길을 지나가던 남자 한명이 있었죠.

  “살려주세요!!”

  “뭐야? 이봐, 당신 뭐야!!”

갑작스런 남자의 출현에 당황한 범인은 지인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골목길로 끌려가서 어떤 일을 당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 2층집, 방범창을 자르고 침입하다.

  이건 제 친구가 겪었던 일이랍니다. 한 여름, 무더위로 인해 밤잠을 설치시는 분들 많으시죠? 대개 창문 열어놓고 많이들 주무실 겁니다. 그날 밤, 친구도 방범창을 믿고 창문 활짝 열어놓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친구네 집은 2층이었어요. 가스배관이 있어서 타고 올라올 수 있긴 했지만, 방범창이 있는지라 안심을 하고 있었죠.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습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칼을 목에 겨누고 있더랍니다. 남자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친구에게 나쁜 짓을 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친구를 칼로 협박한 후, 바지를 내리려는데 바지가 잘 안 내려갔던 모양입니다. 주춤주춤 하고 있는 찰나, 친구가 남자를 힘차게 밀어버리고 침대 옆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엄마, 아빠!! 사람 살려!!”

부모님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남자는 도망간 후였습니다. 창문을 살펴보니, 방범창이 가로로 잘려 있었습니다. 일반 가정집에 많이 설치하는 둥근 알루미늄 방범창입니다. 절단기만 있으면 소리도 없이 쉽게 잘리지요. 방범창도 믿을 게 못 된단 말입니다. 친구가 워낙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이라, 범인의 지시에 잘 따르는 듯 얌전하게 있다가 잘 대응했으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동안 정신적인 고통에 크게 시달렸답니다.

 

- 무서운 밤, 범인들은 혼자 있는 여자를 노린다.

  어쩌다 보니, 주변 사람들 중에 저런 일을 겪은 사람이 몇 있네요. 아마 내 자신이 그런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저런 일이 많이 일어난답니다. 밤에 혼자 길을 지나가는 여성분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되도록이면 일찍 다니고,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길이라면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해요. 호신용 무기 등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집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늦은 밤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자거나, 창문을 열어둔 채로 거실에 나와 있으시면 곤란합니다. 알루미늄 방범창은 절단기로 소리 없이 잘리기 때문에 격자 방범창으로 교체하고, 되도록 밤에는 창문을 안 열어두는 게 상책이겠죠. 참, 심난한 세상입니다. 법은 갈수록 강화되어 가는데, 왜 범죄가 끊이질 않는 걸까요? 스스로 몸조심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세요~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한낮의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일교차 큰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 밤길도 조심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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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지난 금, 토로 여행을 다녀와서 몸이 무척 피곤한 상태입니다. 어제 저녁 집에 들어와 보니, 분홍색 택배 상자가 바닥에 놓여져 있더군요. 내용물이 ‘컵’으로 되어 있네요~ 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가츠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했던 revu 검정색 머그컵!!



  지지난 주 금요일~ 가츠님의 레뷰걸 관련 이벤트 글 읽다가 ‘컵이 너무 이뻐요~ 갖고 싶네요~~’라는
반강압적 댓글을 달았더니, 바로 하나 선물해주시겠다고.. 하하하~ 가츠님 복 받으실 거예욧~~ 여행 갔다 와서 피곤했는데, 이쁜 컵 보니 피곤이 싹 가시는 듯 합니다~ 까맣고 부드러운 레뷰컵!! 컵 안에 국화차도 하나 들어 있구요~~ 얼른 한잔 타 마셔야겠습니다~



  가츠님 정말 감사하구요^^ 저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ㅋㅋㅋ 흠흠.. 생각하고 계세용^0^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네요~ 아침 저녁으론 다소 쌀쌀합니다. 일교차 무척 클 거라고 하네요. 신종플루 때문에 난리인데, 요새 같은 때 더더욱 감기 조심하시구요~~ 오늘도 팟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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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며칠동안 무척 바빴습니다. 그제는 당직을 섰더니 머리도 띵하고 피곤해서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밤새 당직을 서고, 오전 근무를 마친 후 퇴근을 했습니다. 새로 바꾼 지 얼마 안 된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잠깐 서비스센터에 들렀답니다. 무슨 기계들이 그렇게 고장이 잘 나는지 서비스센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 연신 웃고 있는 그녀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데 데스크에서 접수를 담당하는 여러 여자 직원들이,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인사를 합니다. 딱딱한 표정으로 있다가도 금방 활짝 웃으면서 말을 합니다. 제 차례가 되어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많이 더우시죠? 어떤 사항이 불편해서 오셨는지요??”

그 여자분은 연신 웃으면서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 웃는 모습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니라 말을 할 때마다 억지로 웃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무척 활달하고 친절하게 저를 대했지만, 저는 그 얼굴을 보는 내내 불편한 맘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곳에서 접수를 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런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겁니다. 고객들 앞에서 말을 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일 때 외에는 무뚝뚝하거나 지쳐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요.


-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데스크에 접수를 하고 잠시 앉아 있는데, 한 민원인이 다짜고짜 접수 데스크로 가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게 뭐예요!! 왜 이렇게 고장이 잘 나는 거죠? 산 지 세달 밖에 안 됐는데, 고장이 났어. 당장 새 것으로 바꿔줘요!”

친절한 그녀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신 친절하게 그 민원인의 화를 달래려고 노력합니다. 민원인은 계속해서 화를 내고 있습니다. 우선 고장접수를 하고 확인 후, 새 제품과 교체를 해 준다고 하자 그런 확인 절차가 왜 필요하냐면서 당장 해 달라고 합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말까지 붙여가면서. 막무가내인 그 민원인에게 그녀들은 끝까지 친절하게 대응을 하더군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서요.

  그걸 보면서 정말 저건 웃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업 상 친절할 것을, 웃을 것을 강요받았지만 얼마나 힘이 들까요? 대체 그녀들은 저 악성 민원인들에게 어디까지 친절해야 하는 걸까요? 아까 보았던 그 불편한 미소의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 나의 경험(심지어는 욕까지...)

  현재는 아니지만 저도 민원 관련 업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꽤나 친절한 편입니다. 처음에는 항상 친절하게 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악성 민원인들 많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고, 되지 않는 것을 되게 해 달라 하고, 마치 자신들이 우리의 속사정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며 막무가내로 화를 낼 때는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욕을 하며 인격적인 모독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로 민원인들에게 화를 내면, 불친절하다고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협박(?)까지 합니다. 정말 민원인들이 인터넷에 불친절 사례 등을 올려서 곤욕을 치른 선배들도 많이 있답니다.

  그제 당직을 서고 있을 때입니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요? 한 민원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벌써 술을 잔뜩 드셨던 것 같습니다. 왜 일처리를 그 모양으로 하냐면서 ‘00년~’이라고까지 욕을 하더군요. 술 취한 사람하고 싸워봤자 뭐가 득이 되겠냐는 생각에 그냥 듣고 있다가 화가 나서 끊어버렸습니다. 대체 저는 어디까지 친절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악성 민원인들에게까지 끝까지 친절해야 하나요?


- 역지사지(易地思之)

  저는 저런 일들을 보고 듣고 직접 겪을 때마다, 저런 악성 민원인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고 ‘당신이 한번 직접 해 보세요~’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민원업무를 했었지만, 저 또한 민원인의 입장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객으로서, 민원인으로서 상대방에 대해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식의 “고객은 왕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만약 입장이 바뀐대도 저럴까요?

  제가 올리는 글 중에서는 배려에 관한 글이 많습니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너무도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저도 자꾸 언급하게 되는 것 같네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역지사지’.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이 중요합니다. 정말 상대방 생각도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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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이른 아침, 까치발로 거실을 돌아다닙니다. 씻고 밥을 먹고, 화장을 합니다. 안방을 조용히 열어보니 엄마가 곤히 주무시고 계시네요. 까치발로 돌아다녔던 것은 다 이것 때문입니다. 주무시는 엄마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요.

  엄마의 깬 얼굴을 보는 것은 일주일에 두 번, 토요일과 일요일 뿐입니다.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는 아직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고, 아침에 출근할 때는 엄마가 주무시고 계시기 때문이죠. 같이 살고 있어도 엄마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얼마 전부터 왼쪽 손이 유난히 저리다고 하십니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손이 저려서 펴지질 않는다고 하시네요. 저혈압으로 가끔 쓰러지기도 하시고, 피곤에 절어서 눈이 퀭하게 들어간 엄마의 모습을 보면 한쪽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네 부모님 중 젊은 시절 고생하지 않고 자식을 키우신 분은 거의 없으시겠지만, 저의 어릴 적 기억에 엄마는 유난히도 힘든 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 고무공장 망하고 새로 시작한 포장마차

  저와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집에 오면 늘 아무도 없었지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첫 직장은,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고무를 찍어내는 공장이었습니다. 아침 8시면 출근해서 저녁 7시가 되어야 퇴근하셨던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마다 저와 동생 밥을 차려 주시러 집에 오셨었구요.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저희들 밥 굶기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셨지요. 때문에 엄마는 오히려 식사를 거르시고 대충 끼니를 때우곤 하셨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엄마가 다니시던 고무공장이 도산을 하였습니다. 사장은 밀린 몇 달 치 월급을 떼먹고 그대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그 때문에 속을 많이 끓이셨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으시고 작은 포장마차 하나를 열었습니다. 술이나 안주거리를 파는 포장마차가 아니라, 떡볶이, 오뎅, 붕어빵 등을 파는 분식 포장마차였습니다. 당시 엄마는 저희 학교 앞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는데 오전 11시 정도에 문을 열어 밤 10시가 넘으면 포장을 정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에 집에 오실 땐 남은 음식들을 싸 오셨고, 저와 동생은 그걸 맛있게 먹곤 했지요.


- 엄마가 창피했던 철없던 그 시절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가게에 잠시 들렀습니다. 엄마를 도와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응. 우리 딸 왔니?”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

  “아냐. 없어.”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수업을 마친 다른 반 아이들이 가게 쪽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창피해졌습니다. 우리 엄마는 왜 이런 걸 해서 사람 창피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단 생각에 저도 모르게 가게에서 멀찍이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 친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어? 쏠? 너 여기서 혼자 뭐해? 혼자 맛있는 거 먹으러 왔어?”

  “응? 아..아냐.”

  “아줌마~ 떡볶이 1인분하구요, 붕어빵 천원어치만 주세요~”

  “그래, 알았다. 쏠아 너도 뭣 좀 먹을래?”

  “어? 너 아줌마랑 아는 사이야”

  “어? 어.. 그냥.. 저는 됐어요. 야, 너네 맛있게 먹어!!”

  “야, 같이 먹고 가!”

  “됐어. 나 먼저 갈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도망치듯이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고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엄마가 슬픈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계셨고, 그런 엄마와 눈이 마주쳤지만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답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지만 애써 외면했습니다.

  한참 뒤, 다시 가게 근처로 나갔습니다. 포장마차엔 아무도 없었고 엄마만 힘겹게 떡볶이를 휘젓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려고 했답니다. 엄마에게 뛰어갔습니다.

  “엄마!! 미안해. 아까 진짜 미안해.”

  “응, 뭐가. 떡볶이 좀 먹을래?”

  “으응...”

떡볶이를 하나 입에 넣는데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창피해서 돌아서 버렸던 철없는 딸, 한마디 탓도 안 하고 떡볶이를 주시던 엄마의 사랑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일까요. 참 어리석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그런 엄마를 창피해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엄마를 돕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동생과 매일 밤 가게로 나가서 포장 정리하는 걸 도와 드렸고, 바쁠 땐 가게에서 붕어빵을 팔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친구들이 엄마가 장사하시는 걸 모두 알게 되었지만,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은 떡볶이랑 붕어빵 등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며 저를 무척 부러워하더군요. 그렇게 몇 년 포장마차를 하다가 제가 대학교 들어갔을 무렵, 작은 분식점을 하나 차릴 수 있게 되었고 현재 엄마는 페리카나를 운영하고 계신답니다.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엄마는 주무시고 계시네요.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세월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유난히도 나이 들어 보이는 엄마. 이곳저곳 편찮지 않은 곳이 없지만, 계속 가게를 하신다고 고집을 피우십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손, 쭈글쭈글하고 마디마디 굵어진 그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몸도 많이 안 좋으신데, 조만간 병원에 예약해서 엄마 건강검진 받게 해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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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신종플루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불안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제는 꼭 외국에 나갔다 오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더라도 신종플루의 위험성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 손 씻기의 중요성

  2003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나 조류독감, 유행성 눈병, 식중독, 독감 등은 대표적인 감염성 질환들이며 신종플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손은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만지며 움직이기 때문에 각종 유해세균에 가장 많이 노출됩니다. 이러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 부분, 특히 코나 입, 눈 등을 만지게 되는 경우 위와 같은 감염성 질병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만진 물건에 손을 댄 사람들에게도 질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감기 등은 공기에 돌아다니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보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잔뜩 묻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 등을 만져 감염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세균을 손 씻기만으로 모두 예방할 수는 없지만, 손만 제대로 씻어도 감염성 질병의 60% 이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예전에 제가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통해 적십자에서 배웠던 올바른 손 씻기 방법을 그대로 실천한 모습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의사협회나 한국건강관리협회 등에서도 손 씻기 방법을 공개하고 있더군요.


- 어떻게 손을 씻을까요? - 10단계(손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여 씻으세요~)

1. 흐르는 물에 손과 팔목을 적셔주세요.


2. 손에 고루 비누를 바르세요.


3.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문지르세요.


4. 한쪽 손을 다른 쪽 손 위로 겹치게 깍지 낀 후 손바닥으로 손등을 닦아주세요.


5. 양쪽 손을 포갠 모양으로 손가락을 깍지 낀 후 양손바닥을 닦아주세요.


6. 두 손을 겹쳐서 돌리면서 닦아주세요.


7. 반대편 손으로 엄지손을 쥐고 돌리면서 씻어주세요.


8. 손바닥 위에 반대편 손가락을 올려놓고 손톱 밑을 씻어주세요.


9. 마지막으로 손목을 잡고 돌리면서 씻어주세요.


10. 흐르는 물에 비눗기를 완전히 씻어내세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손을 씻은 후, 마른 수건이나 종이 수건 등으로 물기를 닦아줍니다. 젖은 수건은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마른 것으로 닦아야 합니다. 위 과정이 겉으로 보기엔 무척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몇 번만 해 보시면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손은 외출 후 집에 돌아온 직후, 재채기나 기침을 한 후, 컴퓨터나 책 등을 만진 후, 돈을 만진 후, 대소변을 본 후 등에 씻어야 합니다. 그 이외에도 손은 자주 씻을수록 좋습니다.

  신종플루!! 손만 자주, 제대로 씻어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손 씻기 방법. 이제는 보지만 말고 실천해서 신종플루의 위험에서 벗어나세요~


오늘도 날이 덥네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내용이 유익하였다면 추천과 댓글 부탁드려요~^^ 저를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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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저녁에 친구와 만나서 밥을 먹고,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어둑어둑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컹컹대며 개가 짖어댔습니다. 어제 영웅전쟁님 블로그에서 ‘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데다가, 개 짖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예전 그 녀석 생각이 나더군요.


- 만남, 가족이 되다.

  녀석을 만나게 된 건, 고3 수능을 눈앞에 둔 때였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빌라에 살다가 마당이 있는 현재 집으로 이사를 왔었습니다. 수능을 3일 앞두고 말이지요.^^;; 이사한 다음날 막내삼촌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는 사람한테 얻게 되었는데 마땅히 키울 곳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우리 집에서 키우라고 하더군요. 얼떨결에 강아지는 우리 집에 맡겨지고, 그렇게 그 녀석은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 너의 이름은 ‘진동’

  강아지는 하얀색 진돗개였답니다.

  “아빠, 이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할까요?”

  “진돗개니깐, 진동이라고 하자~”

  “진동이? 아, 촌스러~ 그게 뭐야~ 무슨 매너모드도 아니고..ㅋ"

  “진동이가 뭐가 어때서? 정겹기만 하구만. 진동아~~ 이리 오련~”

그렇게 해서 저희 집에 왔던 백구의 이름은 ‘진동’이가 되었습니다. 식구들 모두가 원래 강아지를 좋아하는 탓도 있었지만, 진동이는 유독히 식구들의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재롱을 부리는지, 화가 나 있다가도 그 녀석을 보면 맘이 녹곤 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모두 밖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집에 오면 늘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동이가 저희 집에 오고 나서부터 빈집에 활기가 넘쳤답니다. 집 쪽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식구들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그때부터 낑낑대기 시작합니다.(진동이는 집안에서 키운 게 아니고 마당에서 키웠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흔들고 팔딱팔딱 뛰면서 가족들을 맞이하곤 했지요. 덕분에 빈집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은 저에겐 더 이상 없었습니다.

  아침마다 집에서 남은 밥과 잔반을 섞어서 먹이를 주고, 가끔 산책을 시켰습니다. 진동이를 보면서 때론, 사람들보다도 더 제 맘을 알아주는 것 같아 그 녀석에게 혼자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답니다. 물론 알아들었을 리는 없지만, 제가 힘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꼬리를 축 내리고 촉촉한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제 손에 코를 비비대곤 했지요. 외롭고 힘들었던 저에겐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 진동이를 습격한 장염

  진동이는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다른 개와 짝짓기를 했고 추운 어느 겨울밤 귀여운 강아지 11마리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아침에 일어나 나가보니, 출산의 고통을 마친 진동이가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끼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다른 개들한테 깔려 죽어 있었지요. 새끼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건지 진동이는 눈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그게 사실 눈물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당시 녀석 눈에서 물이 흘러 내렸던 건 사실입니다.)

  새끼들 중 2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곳에 주었답니다. 새끼 강아지 두 마리에게 각각 ‘희망’, ‘소망’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진동이와 희망, 소망이가 모두 바닥에 늘어져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세 마리 모두 장염이라 했습니다. 주사를 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희망이와 소망이는 피똥을 누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진동이가 걱정됐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녀석을 살려달라고..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진동이는 장염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론 정기적으로 주사도 맞히고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답니다. 그렇지만 진동이는 그 후에는 장염을 두 번이나 앓았습니다. 그래도 모두 이겨냈지요. 그만큼 저희 가족과 질긴 인연이 있었던가 봅니다.




- 이별

  진동이는 정말 저희 가족 중의 하나로 그렇게 7년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저는 취업을 하게 되어, 집에서 먼 충주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살게 된 것은 처음이어서 무척 외로웠답니다. 집과 진동이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매주 올라가서 식구들과 진동이를 보면서 기운을 내고 다시 충주로 내려가곤 했지요.

  그날도 어김없이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동생에게 전화가 오더군요.

  “누나. 누나.. 엄마가 진동이 다른 곳에 보냈어.”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키우기가 너무 힘들대. 더 이상은 개 못 키우겠대. 이제 우리 집에 진동이 없어.

갑자기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선 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동물들도 키우고 있었는데, 동물들을 키운다는 게 손이 보통 많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당시 많이 편찮으셨고, 저랑 동생도 지방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처분해 버리신 모양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보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진동이를 볼 수 없단 사실에 동생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저한테는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울고 웃고, 7년을 함께 했는데... 집에 가서 엄마한테 화도 많이 내고 한동안 녀석을 보고 싶은 마음에 많이 울었답니다.

 

- 이젠 추억으로 남은 그 녀석

  사실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제 맘을 이해하지 못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정말 가족이자 친구였답니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아직도 길에서 진돗개들을 볼 때마다 우리 진동이 생각이 나곤 한답니다. 헤어진 지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어제 영웅전쟁님 글을 읽으면서 녀석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기억 속에 예쁜 추억으로 남은 그 녀석. 오늘따라 진동이가 눈물나게 보고 싶습니다.


주말동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늦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랄게요^^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래 추천버튼과 댓글 부탁드릴게요~ 저를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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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무척이나 돈이 궁했던 대학시절, 방학 때만 되면 돈이 될 만한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눈을 불을 켜곤 했습니다. 벼룩시장이니 교차로니 온갖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정보를 찾아 헤매곤 했지요.



-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 급하게 돈이 필요하였습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구인광고지를 급하게 뒤지다가 빙고!! 드디어 하나 발견했습니다. ‘방향제 판매 아르바이트’ 기본급+알파. 기본급도 6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아~ 이거 괜찮겠다 싶었지요. 당장 전화로 아르바이트 문의를 하였습니다. 낼부터 당장 일이 가능하다더군요.

  다음날,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 할 장소를 향했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했지만, 거금에 눈이 먼 저는 버스 여러 번 타는 귀찮음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답니다. 아르바이트 장소는 예상 외로 꽤나 좁고 허름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정말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싶더군요.

  전단지 상에는 기본급+알파라더니, 사장을 만나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예 성과제더라구요. 방향제 하나의 가격은 3천원. 한 개를 팔면 천원을 아르바이트생이 가지게 되고, 나머지 이천 원은 사장이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은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장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 19살, 방문판매에 뛰어들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방문 판매제였습니다. 가정집을 제외한 모든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공장, 상가, 시장, 학원, 병원, 동네 작은 슈퍼까지 가정집만 빼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갔습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도 붙잡고 판매를 할 정도였지요. 그 당시에는 방문판매라는 것이 뭔지, 불법인지 아닌지도 몰랐습니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정해진 장소로 갑니다. 본사는 수원에 있었지만, 방문판매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울, 대전, 천안 등등. 판매 목적지에 도달한 후, 곳곳으로 흩어집니다. 손가락 하나에 방향제 다섯 개씩 끼고 공장이든 상가든 닥치는 대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십니까~ 방향제 판매 아르바이트생인데요~ 방향제 하나만 사 주세요.ㅜㅜ 이거 천연 재료로만 만든 방향제라서 머리도 안 아프고 좋아요~”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어린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대견하게 여겨서인지 사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천연재료로 만든 방향제라고 광고를 하였지만 제가 느끼기엔 싸구려 재료로 만든 방향제 같았습니다. 굉장히 독한 냄새가 나구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허위광고를 한 셈이군요..ㅡㅡ;;;;) 이렇게 방향제를 판매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원래 장소로 집결을 한 뒤 본사로 돌아가 판매한 개수대로 일당을 주었습니다.

  첫날 제 성과는 방향제 50개 판매. 첫날 치고는 꽤 괜찮은 점수였습니다. 첫날 오만 원을 손에 쥐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겪었던 피곤함과 창피함은 눈 녹 듯 사라지더군요.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10개도 못 팔았습니다. 자기는 도저히 창피해서 못 하겠다면서 다음날 바로 그만둬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보고도 같이 그만두자고 하였지만 우선 돈을 손에 쥐고 나니 ‘창피한 것 그까짓 게 무어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전 혼자 남아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 너 앵벌이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좋아지는 제 판매 실력~ 점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많아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새로운 판매장소를 향하였지요. 그날 행선지는 제 기억에 청계천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계천 복구되기 전이었지요. 유난히 추웠던 그날, 두꺼운 점퍼를 입고 여전히 손가락에는 방향제를 끼우고 장사를 하기 위해 차를 나섰습니다. 퍽이나 추워서 손가락은 얼고 급기야 땡땡 부어오르기까지 하였습니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얼굴도 빨개지고 머리도 헝클어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다가 목표 부동산 발견!!

  “안녕하십니까~ 방향제 아르바이트 학생인데요~ 방향제 팔러 왔어요~ 하나만 사 주세요~”

  또 방향제 광고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이런저런 광고를 하였는데 부동산 주인 반응이 영 미지근하더군요. 저를 한참동안 의심스러운 눈길로 위아래 훑어보더니 내뱉는 말.

  “너 앵벌이지?”

헉. 앵벌이라니. 발끈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소지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제 상태가 말이 아니었거든요.

  “아니예요~ 전 그냥 대학생이구요. 방향제 판매하는 아르바이트생이예요~”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손도 얼어붙고,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가 이런 거 시키는거야, 학생?”

  “아 정말 저 그냥 아르바이트생이라니까요~”

  “자꾸 거짓말 칠거야? 어디 학교 다니는데?”

  “저 00대학굔데요?”

주인아저씨의 의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끝없이 심문을 계속할 것만 같았습니다. 학생증을 보여 달라더군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팔아야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아냐, 이걸 기화로 많이 사달래자.. 으흐흐’하는 교활한 생각에 학생증을 재빨리 내밀었습니다. 학생증을 확인하고, 무슨 과인지까지 확인하고서도 의심을 못 푸는 지 이제는 가족사항이며,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까지 묻더라구요. 최대한 진심 어린 표정으로 성실하게 답변했습니다.(사실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음, 학생이 고생이 많네. 기특해.”

  “아저씨 저 기특하죠? 그럼 좀 많이 사 주세요~^^”

  결국 저는 그 부동산 아저씨한테 싸구려 방향제 10개를 팔았습니다. 제가 퍽이나 대견스러워 보였던 모양입니다.(아싸~ 성공!! 전 속으로 교만한 웃음을 지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 부동산을 나설 때 뒤에서 들려오는 말..

  “으이구, 불쌍하네. 정말로 앵벌이 아니겠지? 저 학생 말 진짤까? 가서 바로 돈 뺏기는 거 아냐?”

아저씨, 의심을 완전히 푼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를 따라오시더니 저희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는 차까지 왔습니다. 앵벌이 시키는 거 아니냐며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보시다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기셨는지 그제서야 돌아가시더군요. 앵벌이로 오해받을 만큼 내 상태가 그리 안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섭섭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 준 아저씨의 마음이 고맙더라구요.


  전 정확히 한달 뒤에 방향제 방문 판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을 일하고 번 돈은 총 120만원이었어요. 한달 아르바이트 한 것 치고는 정말 많이 벌었죠? 앵벌이로 오해 받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등 창피한 일도 많았으며, 춥고 배고팠었지만 나름 저한테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 같네요. 그때는 정말 돈이 궁해서 시작한 거였으니.

  그 이후에도 방학 때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방문판매 등의 아르바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절대로 다신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때가 너무 그리워지는 건.. 다시 돈이 궁해져서일까요?^^;; 힘들긴 했지만 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시간이었답니다~^^

오늘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비 피해 없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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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 들어오기 전, 취업을 위해 1년 반 정도 시립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 일 년에 한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만약 한번 떨어지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을 때였지요.

  시립도서관의 3층에는 수험생들을 위한 독서실이 마련돼 있었는데, 오른쪽의 독서실은 칸막이가 없는 곳이었고 왼쪽의 독서실은 칸막이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왼쪽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많은 요소들을 접하게 되는데요, 그것이 자기 스스로에 기인한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요소일 때, 예민해진 신경이 곤두서서 공부에 더욱 집중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면서 겪었던 짜증났던 일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와아~~~ 또 정ㅋ벅ㅋ
우와아~~~ 또 정ㅋ벅ㅋ by 카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시험공부하는 4팀과 커플 하..
시험공부하는 4팀과 커플 하.. by Pengdo-oing 저작자 표시비영리


1.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숨소리, 연필 소리 등 밖에 나지 않는 조용한 독서실에 들어오면서 하이힐이 웬말인가요? 신은 것까진 좋습니다. 그렇다면 조용히 왔다 갔다 해야지요. 빈자리를 찾는다면서 계속 또각또각 독서실을 돌아다닐 때 그야말로 신경이 머리  끝까지 곤두섭니다. 독서실에 올 땐 되도록 소리 나는 신발을 신지 않든지, 신었더라도 조용히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2. 냄새나는 음식 섭취~

  독서실 안에서 음식을 드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과자를 먹는 경우인데 보통 과자봉지를 조심스레 뜯어서 조용히 드시더라구요. 그런데 간혹 김밥이나 간단한 도시락 등의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컵라면을 드시는 분들도 봤습니다. 공부할 때 주변에서 음식 냄새가 나면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독서실은 공부하는 곳이지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공부하면서 배가 고프기 때문에 간단하게 과자 등을 먹을 수는 있지만, 김밥, 도시락, 컵라면까지 갔다면 마땅히 식당에 가서 먹어야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랍니다.


3.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

  누구나 한번쯤 공부하면서 엎드려 자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도 물론 자주 그랬구요. 그런데 가끔 독서실을 집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서실의 칸막이를 방패삼아 아예 대 놓고 주무시는 분들이 그 경우입니다. 대체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아님 자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갑니다. 독서실은 보통 자리 경쟁이 치열한데, 미리 와서 앉은 그 자리에서 잠만 자고 있다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겠지요. 게다가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다면!!!


4. 전화벨소리→진동모드, 전화통화는 제발 바깥에서!!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전화가 많이 옵니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구요. 그런데 문제는 도서실 내에서 전화벨소리를 그대로 켜 놓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따르릉~’, ‘띠리리리~’ 하루에 4~5번 이상은 꼭 벨소리가 들립니다. 게다가 전화를 독서실 내부에서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큰 목소리로 받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조용한 목소리로(주변 사람에게는 대화내용이 명확히 들릴 정도로..) “응, 나 지금 독서실이야. 어. 내가 좀 있다가 전화할게. 응.” 이런 식의 대화까지 나눕니다. 제발 독서실 내에서 벨소리는 진동으로 해 놓고, 전화는 나가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기본 예의라는 건 알고 있으면서 왜 지키질 못하는 걸까요?


5. 이리저리,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저는 독서실에 한번 들어가면 웬만해선 자리를 잘 비우지 않습니다. 집중력이 무섭게 뛰어나서이겠죠??^^;;; 사실 그런 건 아니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공부에 억지로라도 집중하려고 일부러 엉덩이 따악 붙이고 앉아 있는 거죠. 그런데(‘그런데’라는 말이 지나치게 반복되는군요. ㅡㅡ;;) 계속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다니시는 분이 대부분이겠지만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돌아다니시는 분이 있어요. 제가 다녔던 도서관의 경우, 자리가 일렬로 늘어져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면 앉아 있는 사람들을 거쳐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15분 간격으로 옆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처럼 집중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이 어떻게 공부에 집중할 수가 있을까요. ㅜㅜ 특히 그 사람이 자신의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 독서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며...

  매일 같이 독서실에 드나들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4년이 지났네요. 그때 당시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저런 일들이 어쩌면 그렇게 짜증이 났었는지요. 물론 지금 다시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해도 저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싫을 것 같아요. 회사 사람들하고 예전에 입사 시험 공부했던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한번 써 보게 됐습니다. 사람은 평생 공부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는데, 전 요새 너무 공부를 안 하고 있네요. 이 글을 계기로 다시 공부 시작해야겠어요.^^


- 덧붙임....

  어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위독하시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당장 소식을 들었을 땐, 사실 별 감정이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뉴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눈물이 왈칵... 다사다난했던 생애,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가셨습니다. 부디 편히 가시길...


오늘은 무척 덥고 낼이나 모레부터는 비가 온다고 하네요.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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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며칠 째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오늘도 선글라스 끼고 나온다는 걸 깜빡했군요. 큰맘 먹고 구입했던 선글라스, 제대로 껴 보지도 못하고 여름 다 날 것 같습니다. 더워서 얼굴이 타 버릴 거 같은데 집에서 나온 후 한참 지나서야 생각이 나니 말이지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더니.. 쯧.. 이런 더위를 가중시킨 짜증나는 일이 있었으니...


- 신호 무시하고 마구 달려~!!

  오후 1시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횡단보도 쪽에 도착하기 이전 이미 신호가 한번 바뀌었더군요. 매번 이런 식입니다. 아무래도 신호와는 악연이..ㅜㅜ 한참을 기다렸나요. 드디어 신호가 바뀌는군요. 습관대로 양쪽 주위를 둘러보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끼익!!!!!!!!!!!!!!!!!!!!!!!!!!!”

승용차 한 대가 제 코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분명 양쪽을 확인했을 때는 차가 달려오고 있지 않았는데, 멀리서 달려오던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저를 발견하고 급히 섰던 모양입니다. 차와 제 다리는 겨우 50cm 정도 밖에는 벌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다리가 다 후들후들 떨리더군요. 만약 그 차가 저를 발견하지 못하였더라면 아마 그대로 치고 지나갔을 겁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교통사고와 인연이 많은 듯합니다. 나중에 포스팅할 기회가 있겠지만, 사실 교통사고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혹시 이 글을 보시고, 저랑 같이 다니면 위험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죠?^^; 나름 행운아랍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눈앞에서 차가 멈춰 서서 실제로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전자 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쌩~하고 지나쳐 버리시더군요. 사고를 낼 뻔하고도 너무도 양심 없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운전자는 사소하게 신호를 위반했지만, 자칫하면 한 사람의 생명에 지장을 줄 뻔 하였습니다.


- 도로를 우리 집 마당같이 이용하세요~ ㅡㅡ;;;;

  저녁 8시.

  볼일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 도로에서 차가 빵빵거리고 난리도 아닙니다. 자동차 경적은 거의 5분 가까이 울려댔고,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귀가 먹먹해지더군요.

  상황을 살펴보니, 택시 한 대가 도로 1차선에 그대로 멈춰서 있는 겁니다. 그 뒤로 차들이 쭉 늘어선 채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4차선 도로였고, 길게 늘어선 1차선을 제외한 옆 차선들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택시 뒤쪽에 있던 차들이 택시를 추월해서 지나가지 않고 뒤에서 계속 빵빵거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요. 결국 뒤쪽에 서 있던 차들은 택시를 추월하고 욕을 하며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택시는 도로 한가운데서 불법 유턴을 하더니, 반대쪽 길가에 차를 세워 손님을 태운 후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는 유턴지역이 아니었으며, 뒤에서 그 많은 차들이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는데도 태연히 기다렸다가 유턴을 한 겁니다. 꼭 4차선 도로가 자신의 집 앞 마당이라도 되는 듯 행동하더군요. 이런 행동들에는 큰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도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위에서 제가 겪은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요. 마구 활개치고 다니는 거리 무법자들에 대한 예를 들자면 아마 끝도 없을 겁니다. 사소하게 시작한 신호위반 등이 교통혼란을 야기시키고 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결국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큰 피해를 입히게 되는데 말이지요.


  아침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거리를 보면 그저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먼저 가 보겠다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갑니다. 때문에 아침 출근길 거리는 꽈배기마냥 엉망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의 심보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신호 준수하고, 바르게 운전하면 바보야. 다들 그렇게 안 하는데 왜 나만 손해를 봐? 나 혼자 노력한다고 바뀌겠어?”

왜 ‘나 혼자만’이라고 생각할까요. ‘나부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모이면 결국 모두가 함께 바뀌게 되는 것을요.


  세계에서 교통사고 1등, 교통체증 1등. 이런 오명을 언제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야 할까요. 내가 먼저 지키고, 그 생각을 모두가 함께 공유하게 되면 우리의 교통문화도 훨씬 좋은 모습으로 정착되지 않을까요? 이제는 정말 바뀌었음 좋겠습니다. 더 이상 아침 출근길이 지옥길이 아니길, 또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전히 매우 덥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 차 조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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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희 집은 통닭 장사를 하였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통닭집이었습니다. 저희 가게는 시장이 아닌 대형마트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맛도 맛이었지만 위치가 좋아서였는지 가게는 항상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따로 배달원을 쓰지 않고, 어머니가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셨습니다. 종업원이라고는 막내 이모 한명. 당시 저는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종종 가게에 나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곤 하였습니다.


- 어머니의 오토바이 사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날따라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닭을 튀겼고 어머니도 배달하시기에 바빴습니다.(나름 닭 좀 튀길 줄 압니다.ㅎㅎㅎ) 그런데 배달하러 나가신 어머니가 한참이 지나도 오시질 않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해 봤지만 받으시질 않으셨습니다. 잠시 후 가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쏠아, 엄마 지금 병원이야. 교통사고 났어.”

  “엄마, 무슨 일이야? 왜왜?”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가게 문을 닫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오는 도중,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어머니의 오토바이를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이 사고로 세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 통닭집 사장이 되다.

  어머니는 사고 때문에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니, 가게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 달이나 가게 문을 닫고 있자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모 월급도 줘야 하는데 말이지요.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가게라는 것이 며칠만 문을 닫아도 그 타격이 심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까짓것, 내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어머니는 제 생각에 당연히 반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기고 우겨서 결국 제 의견을 어머니한테 관철시키고 말았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를 자주 도와드리면서 흔히 봐 왔던 것들이었는데, 막상 제가 하려니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해 보이기만 합니다. 기름통을 씻고, 새 기름을 부어놓고, 배달되어 온 생닭 정리 및 닭 재단하기 등등. 가게 청소도 해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건 대충 하겠는데 이 기름통을 청소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온통 미끌미끌. 폐기름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 따로 모아 두었는데 이것을 식용유 통에 따로 담는 것도 힘들기만 합니다. 어찌어찌 어머니 하시던 대로 흉내 내서 손님 맞을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막내이모는 12시쯤에 출근을 하였는데 이모와 저는 닭 튀기는 일을, 배달은 마침 방학이었던 동생이 맡게 되었습니다. 닭 튀기는 방법을 배워 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이모가 있다고는 해도 바쁠 때는 두 명이 한꺼번에 닭을 튀겨야 하기 때문에, 한쪽에서 튀기는 방법을 모르고 있으면 주문이 밀리게 되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세 달 동안의 좌충우돌 통닭집 경영이 시작되었습니다.


- 황당한 닭다리 실종 사건

  아무래도 어머니가 안 계시니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모는 저보다도 더 늦게 어머니에게 일을 배웠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제가 이끌어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아침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게 문을 열고, 청소하고, 손님맞이 준비하고... 오후부터는 정신없이 닭 튀기다가 12시가 넘어서야 피곤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자는 나날이 계속 되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세 명은 나름 훌륭하게 각자의 역할을 소화해 냈고 어머니가 직접 장사를 했을 때와 비슷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통닭집을 운영하는 세 달 동안 황당한 사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것은 ‘한쪽 닭다리 실종 사건’입니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서, 장사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느끼던 어느 날입니다. 오후 4시, 닭 주문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씩씩대며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조금 전 닭을 튀겨간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뭐요? 이것 좀 함 봐봐요.”

그 사람이 내민 것은 우리 가게에서 튀겨간 통닭이었습니다. 통닭의 다리 한쪽이 뜯겨져 나가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당시 저희 가게는 닭을 잘라서 튀기기도 했지만, 통째로 튀기기도 했는데 이 손님은 통째로 튀긴 닭을 사 갔었습니다.)

  “다리 한쪽을 뜯어먹고 준 거요? 당장 다시 튀겨내요!”

  “손님, 이건 조금 전에 튀긴 닭 직접 가지고 가신 거잖아요. 저희가 어떻게 다리 한쪽만 뜯어내고 튀기겠어요?”

  “아니 이 아가씨 봐라?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요? 다시 안 튀겨요?!!”

  막무가내였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닭다리가 한 쪽이 뜯겨져 나간 채로 튀겨졌다면, 다리가 없는 부분은 튀겨진 흔적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가 봐도 튀긴 후에 다리가 뜯겨진 흔적이었습니다. 아니면 포장하다가 한쪽 다리가 뜯겨져 버렸을까요? 바쁘던 시간도 아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다시 튀겨내라고 우기는 사람을 상대로 싸워봤자 이득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다시 튀겨주고 말았습니다. 포장을 하기 전, 양쪽에 다리가 모두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을 시킨 후 그 사람에게 주었답니다.


<아는 분이 하시는 페리카나~ 저희 가게는 다른 곳에 있어요~^^;;>


  어머니는 세 달 후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나서 바로 가게로 복귀하셨지요. 몸이 안 좋으신 것을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제가 계속 사장 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3년 정도의 공백기를 거치고 어머니는 현재 페리카나를 운영하고 있으십니다. 페리카나에서 통으로 파는 닭은 없기에 더 이상 한쪽 다리가 뜯겨져 나갔다는 손님은 없네요.^^

  어제가 말복이라 삼계탕 같은 보양 음식 드신 분들 많으시겠어요. 삼계탕 무척 좋아 하는데 어제 점심 땐 김밥 대충 먹고 말았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말복, 말복 하니깐 예전에 닭집 운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힘들긴 했지만 참 재밌고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어제 삼계탕 못 드신 분들~ 오늘 저녁 치킨에 맥주(저는 술을 못 먹는 관계로 사이다^^) 어떠세요?^^ 참고로 닭은 175도에서 10분 정도 튀기는 것이 가장 맛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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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