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로 한창 바쁠 오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였습니다. 멀리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도 저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거의 없으셨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그렇게도 생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쁘냐?”

  “응, 조금. 무슨 일이야, 엄마가 전화를 다 하고?”

  “정희가 쓰러졌단다. 지금 의식불명인 상태래.”

  “왜왜? 왜 그러는데?”

  “자세히는 몰라. 사람도 못 알아본대. 지 자식도.. 퇴근하고 병원 좀 가봐라. 중환자실에 있어서 면회시간이 7시 40분부터 8시까지란다.”

  “엄마 어떡해. 어떡해.”

  엄마를 통해서 듣게 된 이야기는 저한테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내내 눈물이 흘러서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고열로 쓰러졌다고 하니, 신종플루일 것만 같았습니다. 오후 내내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Inside The ICU



- 늘 씩씩했던 그 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

  이번에 고열로 쓰러졌다는 지인은 네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외벌이에 네 아이를 양육하며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씩씩했습니다. 이제 겨우 7살이 된 큰 아이, 그리고 그 밑으로는 5살, 3살, 2살의 아이가 있습니다. 잠깐의 외출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2살짜리 아기는 등에 업고, 3살짜리는 안고, 7살과 5살 아이의 손을 잡고 바깥에 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철인을 연상케 했습니다. 참 힘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늘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었답니다. 그 분을 보면서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네 아이를 양육하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늘 건강하고 명랑하고 씩씩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고열로 쓰러졌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몸이 무쇠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이상, 그렇게 고생하면 체력이 바닥이 날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그 분은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너무 대단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신종플루일까봐 걱정했더니, 뇌수막염이라니..

  그 날 저녁, 업무가 끝난 후 중요한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빠질 수 없는 자리였던 터라 우선 회식자리에 참석한 후, 시계를 보며 초조히 면회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회식자리와 병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나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중환자실에 도착해서 본 그 분의 모습은 너무도 안쓰러웠습니다. 바짝 마른 얼굴에 팔은 온통 멍투성이었습니다. 고열로 정신을 잃었을 때 닝겔을 꽂으려고 하자, 몸을 하도 버둥거려서 생긴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갔을 때는 다행히 고비는 넘긴 상태였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그 전날 오전부터 계속 열이 났었는데, 오후가 되자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더랍니다. 그래서 업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왔는데, 첨엔 신종플루인 줄 알고 관련 병동으로 보냈었는데, 고열 외에는 신종플루와 일치하는 게 없어서 다른 검사를 한 결과, 세균성 뇌수막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뇌수막염은 뇌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의사도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모른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혹시나 모를 뇌손상을 위해 MRI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검사결과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네요. 뇌수막염으로 쓰러지면 경과가 좋은 경우에도 보통 3, 4일이 지나야 깨어나는데, 지인의 경우 이틀 만에 깨어났으니 회복 정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3주 정도만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 역시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닌 듯.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 분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긴 후였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과 몸, 부르튼 입 등 여전히 쇠약한 상태였지만 정신은 맑아 보였습니다.

  “쏠, 왔어? 고마워. 나 꿈꾼 것 같아. 팔도 다 멍들고. 정말 이럴 줄 몰랐어. 사실 며칠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했었는데, 결국 정말 쉬게 됐네.^^;”

띄엄띄엄 힘들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말리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많이 회복된 듯 보여 마음은 참 편안하더군요. 그래도 말은 정말 조심해서 해야 하나 봅니다. 쉬고 싶다고 말했다가 이런 식으로 정말 쉬게 될 줄이야.^^;;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번 일로 인해서 정말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빨리 처신했기에 이만한 일로 끝났지 조금만 늦어졌으면 뇌에 큰 손상을 일으킬 뻔했다고 의사가 말했거든요. 지인의 집에는 양가 부모님들이 오셔서 아이들을 봐 주시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참에 아이들로부터 해방(??)돼서 푹 쉬고, 건강 얼른 회복했음 좋겠네요.

  전국적으로 비가 오네요. 오늘 지나면 많이 쌀쌀해진다고 합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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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
 

  여러분은 언제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 보셨나요? 전 중학교 1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 보았답니다. 초등학교(저 다닐 땐 국민학교였지만...^^)때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까지도 집과 근처 동네가 생활권의 전부였습니다. 집, 학원만 왔다갔다 하고, 동네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노는 평범한 학생이었지요.


- 에버랜드 소풍 가는 날!!

  그러던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그날은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로 소풍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학교를 향했습니다. 아침 9시까지 학교에 집합하여 선생님들의 지휘 하에 단체로 에버랜드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가 보는 에버랜드!! 그곳은 환상과 꿈의 나라였습니다. 넘쳐나는 기상천외한 놀이기구들과 볼거리들, 화려한 퍼레이드. 몇날 며칠을 놀라고 해도 다 부족할 만큼 저에게는 멋진 동화 속 세상처럼 느껴졌답니다. 4시까지 집합하라고 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몇 분 남겨두고 집합 장소로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한명도 빠짐없이 모인 것을 체크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차례대로 시내버스에 태워서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탔었지만, 집에 갈 때는 친구들과만 버스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 만원버스에서 못 내리다.

  에버랜드가 출발점이었던 그 버스는 정류장을 거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사람이 늘었습니다. 결국 버스는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이 빽빽이 차 있었지요.

  “혜정아, 어디서 내리는지 알지?”

  “걱정 마, 난 혼자서 버스 자주 타 봤어. 자연농원 접때두 친구들하고 버스타고 갔었는걸.”

  “그래, 너만 믿어~”

  그렇게 한참을 갔을까요. 한참을 재잘대다가 친구가 내리자고 끌어당겨서 버스 출구 쪽을 향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운전석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겨우 빠져 나가고 제가 맨 끝에서 뒤 따라 나가던 순간, 문 앞에 있는 큰 짐에 그만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 버스 문은 속절없이 닫히고 말았답니다. 지금이라면 “아저씨, 잠깐만요!!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소리쳤겠지만, 그때는 버스에 혼자 남게 된 것이 처음이라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라도 내리면 될 것을 전 바보처럼 발만 동동 구르며 그렇게 몇 정류장을 지나버리고 말았습니다.



- 5천 원 내고 버스 타다.

  바보 같이 그렇게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지나친 지는 오래고, 내린 곳은 난생 처음 가 본 장소였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얼른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도통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한적한 장소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버스에서 내린 반대방향으로 길을 건넌 후, 버스를 잡았습니다. 00로 가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간다고 합니다. 휴~ 이제 살았네요. 버스에 올라선 후, 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이런!! 5천 원짜리 한 장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동전도 없고, 회수권도 없습니다. 버스 혼자 타는 것도 처음인데다가,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5천 원을 내밀었는데, 기사 아저씨 버럭 하시더군요.

  “학생, 동전 없어? 천 원짜리도 없어?”

  “네.. 없는데요.. 이것 밖에..ㅜㅜ”

  “거스름돈을 어떻게 줘야 해.. 휴우. 우선 거기 있어봐. 다른 손님들 오면 대신 돈 받는 수밖에.”

  아저씨는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하셨습니다. 아저씨도 황당하셨겠죠. 5천 원을 내밀면 거스름돈 주기도 곤란하고. 지금 같이 교통카드가 있었던 때라면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충전식 교통카드를 충전시키지 않아, ‘잔액이 부족합니다.’라고 떴던 경험도 있긴 하지만.^^;; 전 너무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죠. 아주머니 한 분이 천 원짜리로 돈을 바꿔주시려고 지갑을 뒤적이셨는데, 개수가 모자랐는지 그만 포기하시더라구요. 그때 그 아주머니 뒤쪽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 한분이 제 앞으로 오시더니 대신 버스 요금을 내 주셨습니다.

  “학생, 요금 냈으니 이리 와서 앉아.”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전 거듭거듭 인사를 하고 빈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요금 받는 곳에 서서 거스름돈 다 채울 때까지 손님들 요금 대신 받을 뻔 했습니다.


  요금 대신 내 주셨던 아저씨는 다행히도 제가 내린 버스 정류장과 같은 곳에서 내리시더군요. 사실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잘 몰랐었거든요.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버스도 잘 타고, 집도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어리버리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좌충우돌 버스 탑승기는 그렇게 해서 막을 내렸답니다.

  지금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는 생활이 되지 않을 만큼 생활권이 넓어졌습니다. 그런 지금도 가끔 버스를 잘못 타거나, 딴 짓하다가 엉뚱한 정류장에서 내리곤 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교통카드 겸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니, 5천 원 내고 당황할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진 않는군요.^^ 요즘엔 돈을 내고 타시는 분들이 거의 없는데, 아침에 버스 타고 오다가 동전 넣으시는 분 보고 옛날 어리버리했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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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쏠트[S.S]